급격한 가뭄·강풍에 잘 타는 외래종 초목까지 피해 키워
세계적 휴양지인 하와이가 산불이 휩쓸고 지나면서 잿더미로 변한 가운데, 이 대형 산불이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하와이가 급격하고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는 데다 강풍이 불어닥치면서 산불이 주거지를 순식간에 덮쳐 피해를 키웠습니다. 불이 더 잘 붙는 외래종 초목이 토종 식생을 밀어내고 하와이를 '점령'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AP 통신 등은 정확한 발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가뭄과 강풍 등 위험한 조건들이 결합해 불이 확산 중이라면서 그 배후에는 기후변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현지 시각 어제(10일) 전했습니다.
최근 몇 주 사이 하와이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려왔습니다. 미국 통합가뭄정보시스템(NIDIS)의 가뭄 모니터에 따르면 지난 5월 23일까지만 해도 마우이섬에서는 ‘비정상적으로 건조한(D0) 단계인 지역이 전혀 없었으나 6월 13일에는 3분의 2 이상이 D0나 ‘보통 가뭄(D1) 단계가 됐습니다. 이번 주 들어서는 83%가 D0나 D1, ‘심각한 가뭄(D3) 단계로 들어섰습니다.
가뭄으로 대기가 토양과 식물의 습기가 증발하면서 불이 잘 붙는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위스콘신대의 제이트 오트킨 대기과학자는 지난 4월 공동 작성한 연구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로 지구가 데워지면서 이 같은 급작스러운 가뭄이 흔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하와이의 강수량도 줄고 있습니다. 하와이대·콜로라도대 연구진의 2015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이후로 하와이의 강우량이 우기에는 31%, 건기에는 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애비 프래지어 클라크대학 기상학자는 라니냐가 약해지고 하와이 상공의 구름층이 얇아지는 등 변화가 있는데, 이들이 모두 기후변화와 연관됐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완전히 타버린 차/사진=연합뉴스
불길을 빠르게 퍼뜨리는 강풍도 문제입니다.하와이에서는 바람이 드물지 않아 보통의 여름 날씨에도 최고 시속 64㎞에 달하는 바람이 불어닥치곤 하지만, 이번 하와이 강풍은 이런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이번 주 빅아일랜드와 오아후에서 풍속은 최고 시속 130㎞에 달했고 이번에 피해가 큰 마우이에서도 시속 108㎞ 수준이었습니다. 하와이 남서쪽 수백㎞ 떨어진 곳을 지난 허리케인 도라의 영향으로 기압 차이가 커지면서 무역풍이 강해져 하와이의 화염을 부채질했습니다.
하와이의 식생 환경도 산불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토종 식물을 몰아내고 하와이를 점령한 외래종 풀과 관목이 불에 더 잘 타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 피켓 하와이산불관리 공동 회장은 과거 파인애플과 사탕수수 농장들이 있던 땅이 산업의 쇠퇴로 외래종 식물들에 점령됐다면서, 이런 외래종 풀에 불이 붙으면 토종 삼림까지 번져 다시 또 외래종이 토종의 자리를 차지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건조한 풍경과는 거리가 멀고 초목이 우거진 곳으로 유명한 하와이에서 이번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은 특히 충격적"이라며 "지구가 가열되면서 재해로부터 보호받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가은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imke39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