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후변화, 인류의 '러브스토리' 만들었다…두 호모 종의 만남
입력 2023-08-11 08:42  | 수정 2023-08-11 09:12
사진=연합뉴스
기초과학연구원, 사이언스에 관련 논문 게재

현생 인류에는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호모 종의 유전자가 섞여 있지만, 그동안은 다른 호모 종과 어떻게 유전적 교류가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식지가 다른 두 호모 종의 만남이 이뤄진 원인이 '기후변화'였다는 사실을 국제연구팀이 밝혀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의 악셀 팀머만 단장(부산대 석학교수) 연구팀은 이탈리아의 기후 및 고생물학 연구팀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오늘(11일)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고기후·식생 시뮬레이션 결과와 고인류학적 증거를 결합해 기후변화가 초기 인류 종들의 상호 교배 시기와 장소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른 인류 종들 사이에 교배가 흔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앞서 2018년 제시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 연구팀이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에 있는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한 화석 '데니'가 데니소바인 아버지와 네안데르탈인 어머니를 가진 13세 소녀였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다른 호모종 간 상호 교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그동안 화석 표본과 고대 DNA 유전적 분석만으로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팀머만 연구팀은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고기후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이 결과를 고인류학적 증거와 유전자 자료와 결합, 네안데르탈인은 온대림과 초원지대를 선호했고 데니소바인은 툰드라와 냉대림과 같은 추운 환경에 더 잘 적응했다는 서식환경 선호를 파악했습니다.

논문 제1 저자인 쟈오양 루안 IBS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네안데르탈인은 남서부 유라시아를 선호하고, 데니소바인은 북동쪽 유라시아를 선호했다"며 "서식지가 지리적으로 분리돼 있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데니소바인의 서식지를 추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진은 덧붙였습니다.

연구진은 이어 이처럼 서로 서식지가 달랐던 호모종의 상호교배가 이뤄진 장소와 시기를 추정했습니다.

지구 공전궤도가 더 타원형이고, 북반구의 여름에 태양과 지구가 서로 가까이 있을 때 호모종 간 서식지가 지리적으로 겹친 것으로 시물레이션 결과 나타났습니다.

알타이산맥, 사르마틱 혼합림, 이베리아반도 등 북유럽 및 중앙아시아지역에서 공존 시기 중 최소 6번의 상호작용이 있었을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습니다.

특히 두 종 간 상호 교배 지역은 간빙기 시기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변화가 기후로 인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유라시아 지역의 식생 패턴이 지난 40만 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과 온화한 간빙기 조건이 온대림을 북유럽에서 유라시아 중앙부 동쪽으로 확장하도록 하면서 네안데르탈인이 데니소바인의 주요 서식지까지 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팀머만 단장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서식지를 공유했을 때 두 집단 간 상호작용이 많아져, 상호 교배의 가능성도 함께 높아졌을 것"이라며 "빙하기-간빙기 변화가 오늘날까지 유전적 흔적으로 남아있는 인류의 '러브스토리'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다진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azeen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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