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가 근로자와 합의해 퇴직금 지급 날짜를 미뤘더라도 그 날짜까지 이를 지급하지 않으면 형사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60대 A 씨의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구 퇴직급여법) 위반 혐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A 씨가 운영하는 세탁업체에서 15년 정도 일한 직원 B 씨는 지난 2021년 5월 말 일을 그만두게 됐습니다.
B 씨에게 지급돼야 할 퇴직금은 2,900만 원이 넘었는데, A 씨는 3주 정도 후까지 퇴직금 일부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까지 퇴직금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구 퇴직급여법)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에는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기일을 연장할 수 있다"고도 명시합니다.
퇴직 후 14일은 물론, A 씨는 연장된 기한까지도 돈을 받지 못해 결국 사건은 형사 재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지급기한 연장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처벌 대상이 되는 건 의무 조항인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주지 않은 행위'만 해당된다"고 봤습니다.
합의 하에 연장된 지급 기일을 지키지 않은 경우까지 처벌하는 것은 공소시효의 산정 등이 어렵고 여러 상황들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형벌법규의 명확성을 해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항소심 역시 "규정된 14일 이후에 이뤄진 일들을 이를 범죄로까지 보기는 어렵다"며 1심 판결을 유지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법은 당연히 지급받아야 할 퇴직금을 최대한 빨리 받도록 해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을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이 법이 "연장한 지급기일까지 퇴직금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형사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조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파기환송을 결정했습니다.
[홍지호 기자 jihohong10@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