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Travel] 두 개의 섬, 두 배의 위로
입력 2023-06-16 00:56 
인천 선재도 앞 목섬은 썰물 때 선재도와 연결된다.
선재도와 영흥도, 그 고즈넉한 섬 여행

서해의 선재도와 영흥도. 경기도 안산 대부도를 거쳐 들어가지만 인천 옹진군에 속해 있는 두 섬은 다리와 다리로 이어져 육지가 된 섬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되 섬이 아닌 곳. 다리가 놓여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두 섬은,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하게 여행자를 맞아준다.
섬에 가려면 배를 타야 하고, 배를 타려면 해상의 날씨가 도와줘야 하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해왔기에 차를 타고 가는 섬 여행이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도 섬이 보고 싶고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을 때, 차를 타고 가서 만날 섬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설사 섬 여행의 정취가 덜할지라도. 섬이되 섬이 아닌 곳, 다리만 건너면 들어갈 수 있는 서해의 가까운 섬, 선재도와 영흥도를 찾았다.
신비로운 두 개의 섬을 거느린 선재도
인천 선재도 앞 목섬
선재대교를 건너는 순간 도시가 섬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다리를 건너기 전 거쳐 왔던 대부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춤을 추었다는 아름다운 섬 선재도는 대부도와 영흥도를 잇는 ‘징검다리 섬이다. 대부도와는 불과 500m, 영흥도와는 1.8㎞ 거리로 2000년과 2001년에 선재대교와 영흥대교로 두 곳과 이어졌다. 다리가 생기며 육지와 연결됐지만 선재도는 섬의 풍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섬의 오른쪽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면 대부도 북서쪽 구봉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 너머 인천 송도 신도시의 전경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한적한 해안선을 따라가며 감상하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그러나 정작 선재도의 절경은 선재대교 건너 왼쪽에 있다. 그곳에 하루 두 번, 바다가 갈라지고 길이 생기는 두 개의 섬이 있다. CNN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선정한 ‘목섬과 사람이 사는 가장 작은 섬, ‘측도다.
목섬
목섬은 선재도를 세상에 알린 섬 속의 섬이다. CNN이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목섬을 선정한 건 하루 두 번 바닷길이 갈라지는 비경, 이른바 ‘모세의 기적 때문이다. 이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섬이 비단 이곳뿐만은 아니지만 선재도와 목섬 사이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모랫길과 그곳에서 체험하는 자연의 신비는 특별한 매력이다. 목섬에서 바다 방향으로 다시 1㎞가량 모랫길이 이어지는데 천천히 그곳까지 다녀와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시간을 잘 맞춰야 목섬까지 갈 수 있으니 사전에 물때를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운 좋게도 노을 무렵 목섬에 갈 수 있다면 최고의 일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목섬으로 가는 길 양옆에 드넓게 갯벌이 펼쳐져 있다.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는 선재갯벌체험장이다. 바지락과 동죽 등을 잡을 수 있는 갯벌체험장은 선재도 선착장에서 신청할 수 있고 입장료를 내면 트랙터를 타고 갯벌에 나가 조개 캐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선재대교 아래 마을에는 소박한 벽화 골목도 있다. 주민들이 사는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정겨운 풍경들이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다. 어촌마을을 밝게 만들어주는 벽화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빙긋 미소를 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풍경이다.
(위)갯벌 (아래)선재도 벽화마을
선재도를 활기차게 만드는 공간이 있다. 바로 선재도의 명물이자 핫플레이스, 뻘다방이다. 목섬과 함께 선재도의 인증샷 성지로 통하는 뻘다방은 이국적 풍광의 감성 카페다. 2015년 문을 연 이곳은 여행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목섬이 바라다 보이는 해변을 마치 카리브해 해변에 온 듯한 기분이 들도록 꾸며 놓았다. 입구부터 카페 내부, 해변 테라스까지 멋진 포토존이 즐비하고, 편안히 쉬기 좋은 공간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목섬이 바라다 보이는 해변 테라스에 앉아 시그니처 메뉴 모히토 한 잔을 하다보면 마치 여기가 몰디브인 것 같다.
뻘다방
또 하나의 섬 측도는 유인도다. 선재도 서쪽 약 1㎞ 거리에 있는 측도는 면적이 0.4㎢, 해안선 길이가 4㎞로 섬 안에 작은 마을이 있는 제법 큰 섬이다. 측도는 바닷물이 맑아 바다의 깊이를 눈으로 잴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또 ‘가까이 있는 섬이란 의미라는 설과 섬에 칡넝쿨이 많아 ‘칡도라는 설도 전해진다.‘모세의 기적은 측도에서도 일어난다. 이곳 역시 하루 두 번 바다가 갈라져 그 사이로 사람과 차가 통행하지만, 목섬으로 가는 길과는 다르게 바닷물이 빠지면 시멘트와 자갈이 덮인 길이 드러나는데 그 길로 자동차가 통행한다.
측도 가는 길의 전봇대
밀물 때 지워지고 썰물 때 열리는 측도 가는 길은 10여 개 되는 전봇대가 볼거리다. 물이 들어와 전봇대가 잠기면 꼭대기 가로등만 남아 길의 존재를 알려준다. 밀물 때와 썰물 때 각기 다르게 보이는 특별한 풍경은 측도를 세상과 멀리 떨어진 신비의 섬으로 느끼게 해준다. 번잡한 세상, 복잡한 일상에 지칠 때 홀연히 들어와 한동안 쉬면 좋을 그런 곳, 측도가 딱 그런 모양이다.
천천히 걷고 편히 쉬고 싶은 섬 영흥도
선재도와 이어진 영흥대교를 넘으면 바로 영흥도다. 영흥도는 면적 23.46㎢, 해안선 길이 42.2㎞로 옹진군에서 백령도 다음 큰 섬이다. 영흥도는 인천에서 남쪽으로 약 26㎞ 지점에 있다. 과거 영흥도를 가기 위해서는 인천에서 배를 타야만 했으나 선재대교와 영흥대교가 건설되면서 인천이나 서울에서 2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섬이 됐다. 당일치기 섬 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주말 여행지로 인기다. ‘한국의 발리로 불리는 영흥도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고, 이국적 풍광의 카페들이 있어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오직 여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선 여행지일지 몰라도 인증샷 성지를 찾아다니는 세대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섬이다.
영흥도 십리포 해변
영흥도에는 두 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동쪽에 십리포해수욕장이 있고, 섬의 서북쪽에 장경리해수욕장이 있다. 십리포해수욕장은 진두선착장으로부터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해서 붙은 이름. 길이 600m 정도의 규모지만 방풍숲과 아기자기한 해변, 빼어난 자연 경관으로 인기가 많다. 해변 오른쪽 끝에는 바다 뷰 카페 ‘하이바다가 있다. 카페와 해변이 붙어 있어 파도소리를 배경삼아 커피 한 잔 마시거나 바다멍에 빠져도 좋은 이곳은 야외 공간에 제주도에서 본 듯한 돌담을 쌓아놓았고 야자나무로 이국적 분위기를 살렸다.
해변 왼쪽 끝에는 해안산책로가 있다. 지금은 정비공사가 한창이지만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산책로를 걸을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영흥도에 다시 한 번 찾아올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로 위안 삼는다. 해안산책로 옆에 조개해변이 있다. 파도가 밀려왔다 빠져나갈 때마다 ‘골골골 영롱한 소리를 내는 하얀 조개해변은 영흥도가 숨겨 놓은 비밀 낙원으로 통한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은밀한 핫 스폿을 찾는 재미를 영흥도를 찾는 여행자 모두 느껴보시길.
십리포 해변의 핫플 하이바다
해안산책로로 가는 해변 길 중간에 영흥도 명물이 있다. 해변을 따라 길게 숲을 이룬 소사나무 군락지다. 150여 년 전 방풍림으로 조성한 350여 그루의 소사나무가 오랜 세월을 버티며 지금까지도 거센 해풍을 막아내고 있다. 이제 고목이 된 소사나무는 구불구불 뒤틀리고 기이한 모양으로 서로 어우러져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배경이 된 해군 첩보부대의 비밀 작전이 영흥도를 거점으로 펼쳐졌으며, 소사나무 군락지에서 야전을 했다고 전해진다. 1997년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돼 지금은 군락지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사나무의 아름다움 또한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소사나무숲
장경리해수욕장은 영흥도 서북쪽에 있다. 길이가 1.5㎞나 되는 영흥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이다. 장경리해수욕장은 너른 해변에 캠핑과 야영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많이 찾고 주말에도 늘 북적인다. 주변에는 100년이 넘은 소나무 숲이 있는데 휴식과 함께 낙조를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라고 소문이 나 있다. 장경리해수욕장 왼쪽으로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돌아간다. 한국남동발전의 해상 풍력단지다.
장경리 해수욕장
영흥도 여정을 마치고 다시 영흥대교를 건넌 넌다. 섬의 정상 국사봉까지는 오르지 못했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섬의 매력을 한껏 느낀 시간이었다. 시인이 살기 좋은 섬인 거 같아”. 십리포해변에서 우연히 듣게 된 어느 여행자의 얘기가 그럴 듯했다. 먼 거리에서 다시 바라보는 측도는 한 번쯤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정겨운 섬이고, 양팔을 벌리듯 하얀 모랫길을 길게 드러낸 목섬은 예상치 못한 절경을 선물한다. 영흥도와 선재도, 두 섬을 여행하며 또 다른 두 개의 섬을 보았고 두 배의 쉼과 위로를 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와서 쉬면 좋겠어. 선재대교를 건너 대부도로 접어들면서 든 생각이다.
섬의 맛, 바지락칼국수
갯벌이 있는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 바지락칼국수다. 어느 곳, 어느 식당이든 제각각 맛깔나게 끓여내지만 영흥도와 선재도의 바지락칼국수 맛은 특별하다. 바로 국내 대표 주산지로 알려진 영흥도와 선재도의 바지락 때문이다. 바지락이 자라는 이곳의 갯벌이 모래와 자갈, 뻘흙 그리고 미생물의 비율이 적절해 최고의 맛을 낸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
그래서인지 살이 꽉 차 있고 바지락 살을 씹으면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길게 이어진다. 국물도 진하고 시원하다. 영흥도와 선재도의 바지락칼국수를 최고로 치는 이유다. 섬에 있는 식당 대부분에 바지락칼국수가 있어 여행길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고 값도 저렴하다. 영흥도의 본토칼국수와 영흥도바지락해물칼국수, 선재도의 다복칼국수, 바람의 마을 등 맛집도 많다.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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