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동산 핵심클릭] 전세를 차라리 내버려 두세요
입력 2023-05-28 11:00 
게티이미지뱅크

결혼은 해야 하는데, 모아놓은 자금은 없고. 사회초년병에게 보금자리 마련은 예나 지금이나 만만치 않습니다. 저 역시도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20년 전 그랬습니다. 집 살 생각은 꿈도 못 꾸지만 월세는 부담스럽습니다. 가진 돈 전부 합치고 대출 끌어모아 전세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세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전세자금 대출이자가 많다고 해도 월세보다는 나았으니까요. 전세를 살면서 돈을 모아 더 넓은 전세를 구하거나 집을 샀습니다. 청약도 넣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있다는 전세는 오랜 기간 월세와 자가 사이에서 주거사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전세가 사라져야할 위기에 강력하게 처했습니다. 곳곳에서 청년층의 꿈을 송두리째 빼앗고 있는 전세사기 사건 때문입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전세사기 피해자 중 목숨을 잃은 사람이 올해 들어서 알려진 것만 5명입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전세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세는 왜 시한폭탄이 됐을까요? 전세금의 단기간 급등 이후 급락이 주 원인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긴 침체에 빠지자 도심에서의 주택 공급은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그러자 전세가격은 매년 뛰기 시작했고, 정치권은 2년에 5% 이상 임대금을 못 올리고 1회에 한해 계약갱신을 강제하는 이른바 ‘임대차 3법으로 불리는 극약처방을 지난 2020년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막 직접 규제는 역효과를 불러 집주인들은 2년치가 아닌 4년치 전세금 인상분을 한번에 받으려고 했고, 전세가격은 더 급등했습니다. 여기까지가 2021년 상황입니다.

그런데 2022년부터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집니다. 임대차법의 부작용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아파트 입주물량은 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기준금리의 가파른 인상으로 전세자금 대출 이자가 빠르게 높아졌습니다. 수요자들은 전세에서 월세로 돌아섰고, 2년 전, 3년 전 가격으로 급락하는 전세가 속출했습니다. 특히, 투자가치가 약해 매매가와 전세가격 차이가 거의 없는 빌라와 도시형생활주택 등이 역전세의 직격탄을 맞아 무갭투자로 수십채를 사들였던 사람들이 종부세 등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면서 전세사기가 큰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사진 : 연합뉴스

세상에 공짜가 없는데 자기돈 한푼 들이지 않고 수백채 사들여놓고, 이제 와서 돈 없다고 나몰라라 하는 사람들은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런 무제한적인 갭투자가 가능하도록 판이 깔려져 있었던 것도 문제 아닐까요? 재건축재개발 가격이 뛰자 정부는 입주권 거래에 갖가지 규제를 가했고 이는 정비사업 속도를 늦추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도심 입주 물량이 예상보다 줄어든거죠. 임대차 3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에선 일시적으로 전세 물건이 씨가 말랐고, 전세금 급등으로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부랴부랴 전세금이 심지어 집값과 같더라도 전세금의 80%까지 임차인에게 대출을 허용했습니다. 무갭투자자들은 이 빈틈을 파고 들었고, 연이은 땜빵식 직접 규제는 결국 전세계 유일한 주거사다리 전세를 '나쁜 제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정부는 전세사기 사건을 계기로 전세 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임차인의 전세금을 집주인이 아닌 금융기관에 맡겨 놓는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선 부작용을 낳는 제도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정책적 노력을 다했다면 조금하게 생각하지 말고 시장의 순기능을 믿고 기다려보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보아온 정상적인 전세 시장은 적어도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진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부동산 핵심클릭이었습니다.
자료: 한국부동산원

[ 김경기 기자 goldgame@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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