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데이트 폭력' 조사 직후 동거녀 살해 사건 재구성해보니 [사건인사이드]
입력 2023-05-27 11:00  | 수정 2023-05-27 11:28
사진=연합뉴스
어제(26일) 서울 금천구의 한 지하 주차장에서 동거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 남성은 동거녀가 데이트폭력으로 신고한 데 대한 앙심을 품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차장 cctv를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추론해봤습니다.

동거녀 살인 사건 재구성

어제(26일) 오전 7시 12분쯤 동거녀 살해범 김 모 (33)씨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 소재 상가의 한 지하주차장을 배회합니다.

그리고 특정 차량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2분 뒤 김 씨의 동거녀 A(47)씨가 주차장에 들어섰고 차량 문을 열기 위해 다가서자 김 씨는 준비했던 흉기를 꺼내 무자비하게 휘두릅니다.


김 씨는 피습으로 힘들어 하는 A씨 차키를 챙기고는, 자신이 빌린 차량에 태워 주차장을 빠져 나갑니다.

경찰은 이 차량을 특정해 이날 오전 9시쯤 경기도 파주로 진입하는 CCTV영상을 확보했고, 약 150명의 인력을 동원해 범행 8시간 여만에 파주의 한 야산 공터에서 긴급체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차 뒷좌석에 있던 A씨는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경찰에 붙잡힌 김 씨는 범행사실을 인정하며, A씨의 데이트폭력 신고에 화가 나 우발적으로 살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범행의 발단인 데이트폭력과 관련해 조금더 시간을 거슬러 살펴보겠습니다.
데이트폭력 경찰 조사 받고 바로 범행

범행 발생 4시간 여 전인 이날 새벽 3시쯤 A씨는 PC방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김 씨는 약 2시간 뒤 A씨를 PC방 앞에서 만났고, 5시 24분쯤 인도를 거리를 두고 걸어가다가 5시 37분쯤 A씨가 어디론가 전화를 겁니다.

김 씨는 이를 제지하며 골목으로 데려갔는데, A씨가 전화를 건 곳은 경찰서였습니다.

A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몇 주 전에도 맞았다고 데이트폭력을 호소하며, 위치 추적 요청을 했고, 경찰은 김 씨를 지구대로 임의동행했습니다.

김 씨는 경찰 조사 뒤 6시 11분 풀려났고, A씨는 7시 7분 귀가 조치 됐는데, 먼저 풀려난 김 씨가 데이트폭력 신고를 따지기 위해 지하주차장에 숨어 기다리다가 보복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연합뉴스

데이트폭력 피해자 접근 금지 못 시키나...보호 조치는?

경찰이 A씨를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보호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A씨가 팔을 잡아당기는 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해 접근금지 처분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긴급 상황 발생 시 위치 추적이 가능한 스마트 워치 착용과 임시 숙소 제공 등을 원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보호조치를 위한 위험성 판단 체크도 했으며 A씨가 주거지 순찰 등록만 수락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더 정확한 살해 동기와 A씨의 사망 원인은 앞으로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겁니다.

그런데 잊을만 하면 터지는 데이트폭력으로 인한 희생은 막을 수 없을까요.
데이트 폭력 위험도 조사 자의적 가능성... 보완 계기 삼아야

지난해 남편 혹은 연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여성은 최소 86명이었고, 살해 위험을 당한 여성은 최소 225명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데이트폭력 사범은 지난해만 1만 2841명이 붙잡혔는데, 전년 대비 21.7%, 8년 전보다 92.4%가 늘었습니다.

검찰은 처벌을 강화하고, 적극적인 구속수사와 엄정한 구형이 이뤄지게끔 대책을 내놨습니다.

또 앞서 경찰은 지난 22일부터 범죄 피해자 위험성 판단체크리스트를 통해 보복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예상하고 피해자 맞춤형 안전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우려는 있었고, 결국 이번 사건에서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의 실효성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격이 됐습니다.

일단 오늘(27일) 오후 예정된 경찰의 브리핑 내용을 지켜봐야겠지만, 더이상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데이트 폭력 대책이 정교하게 마련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오지예 기자 calling@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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