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생생중국] 얼마나 신성하길래…중국 반도체 프로젝트에도 이름 붙여진 우당산
입력 2023-05-21 14:31  | 수정 2023-06-19 16:00
타이쯔포(太子坡)의 타이쯔디엔(太子殿)에서 바라본 우당산.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깊은 산세가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 사진 = MBN 촬영
중국 ‘도교의 성지’ 후베이성 우당산
사활 건 반도체 산업 극비 프로젝트에 ‘우당산’ 이름 붙여
우당산 신성함 등에 업고 반도체 자립 이룰까
아직 5월 초순인데 중국 대륙의 배꼽 자리에 있는 후베이성(湖北省)의 햇볕은 내 이마를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일행과 함께 우당산(武當山, 우리에게는 <무당산>으로 익숙한 그 산이다)에 오르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 이곳을 이미 와 본 적 있는 일행 중 한 명이 멀미약을 권했다. 이유를 묻자 우당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워낙 구불구불해서 차를 타고 가다가 두통과 멀미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일행 중 몇 명은 실제로 출발 전 멀미약을 먹었다. 산세가 깊어 정말 굽이굽이 올라가는데, 창밖을 바라보니 모퉁이를 돌 때 가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건 아닌지 아찔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이 무더위에 산 중턱까지 차를 타고 편히 왔으니 얼마나 다행이던가.


중국의 5대 명산은 ‘오악…그 보다 더 귀한 ‘태악 우당산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명산을 언급할 때 흔히 오악(五嶽)을 꼽곤 한다. 중악 총산(崇山), 동악 타이산(泰山), 서악 화산(華山), 남악 헝산(衡山), 북악 헝산(恒山)이 그곳이다. 그런데 이 오악을 넘어 중국인들이 우러러보는 산이 있으니 바로 ‘오악보다 더 큰(太) 산이라고 해서 태악(太岳)이라고 불리는 이곳 우당산이다. 우당산은 중국 도교의 성지로 불리며, 중국인들이 평생 꼭 한 번은 오르고 싶어 하는 산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당산 곳곳의 신전마다 무릎을 꿇고 참배하는 중국인들로 북적였다. 우리 일행 중 몇몇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우당산에 가게 된 계기는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기사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달 2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미국의 수출 통제 정책에 맞서 중국산 장비로 첨단 3D 낸드 플래시 생산에 도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 흥미롭다. 이른바 우당산 일급 비밀 프로젝트. YMTC 본사가 우당산이 있는 후베이성에 위치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YMTC가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으면 중국인들이 신성시하는 우당산의 이름을 프로젝트에 붙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이다. 지난해 문을 닫은 반도체 회사만 5천7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 전년도보다 70% 가까이 늘어난 건데, 2021~2022년 2년 동안에만 9천200여 개의 반도체 회사가 사라졌다. 세계적인 반도체 경기 침체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수출 통제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올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올 1분기 중국 반도체 회사 10곳 중 8곳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실적이 더 나빠졌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반도체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 산업 붕괴 위기에 직면한 중국은 우당산의 효험이라도 바래야 하는 걸까?

우당산의 거대한 비석을 쓰다듬는 중국 관광객. 미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중국에게 힘을 불어넣어달라고 비는 걸까? / 사진 = MBN 촬영

우당산 권법가들 중 발견한 미국인…미중 갈등 묻자 무술로 다리 역할 하겠다


우당산에서의 흥미로운 경험은 따로 있었다. 우당산 쯔샤오궁(紫霄宫) 쯔샤오디엔(紫霄殿)에 다다랐을 때였다. 무협 소설에서 흔히 중국 최대 문파를 꼽자면 우당(武當)파와 샤오린(少林)파를 꼽는다. 그런 만큼 우당산에는 권법을 수련하는 무술가들이 즐비하다. 종종 관광객들 앞에서 시범도 보인다. 내가 방문했을 때 권법 시범을 보인 사람은 여느 중국 무술가와는 확연히 달랐는데, 바로 벽안(碧眼)의 권법가인 미국인 제이크 피닉(Jake Pinnick) 씨였다. 피닉 씨는 10여 년 전 중국에 왔다가 우당산과 권법에 흠뻑 빠져 아예 이곳에 눌러 앉았다”고 한다. 급기야 권법 사범까지 됐단다. 그의 절도 있는 무술 시범에 우당산을 찾은 관광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인으로서 중국 무술의 본산에서 권법을 수련하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피닉 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저는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부분(미-중 갈등)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중국에서의 내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죠.” 그러면서 말을 잇는다. 내가 양국 간에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좋은 부분들을 양쪽에 전달하는 역할 말이죠. 각 나라의 전통문화는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무술을 통해서 중국에서나 혹은 미국에서나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 제이크 피닉 씨가 우당산 신전 앞에서 무술 시범을 하고 있다. 치열한 미-중 경쟁 속에 중국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우당산의 권법 사범이 미국인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 사진 = MBN 촬영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의 기를 꺾어놔야 세계 패권국으로써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도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니다. 여기서 밀리면 미국을 따라잡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나라들에게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강하다. 그렇기에 국가적 사활을 걸고 반도체 기술 역량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나라가 벌이는 기술 패권 경쟁에 우리나라가 자의 타의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건 주변을 맴돌던 새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미 국면 국면마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하는 걸 보고 있지 않은가. 우당산을 내려오면서 빨리 이런 혼란한 상황이 가라앉기를 기대해 본다.

[윤석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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