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유동규의 기억력' 물고 늘어진 이재명과 측근들…효과는? [법원 앞 카페]
입력 2023-05-06 09:00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3월 3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3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 왼쪽) 이 대표에 앞서 이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법원 내 다른 출입구를 통해 이 대표 재판의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기억 납니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최근 잇따라 증인으로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한 질문과 답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입니다.

'김문기 모른다' 발언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뇌물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는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 측근들은 일제히 유 전 본부장의 '기억'을 집중 공격하고 있습니다. 변호인들은 물론 피고인인 이 대표 등이 직접 유 전 본부장을 신문하는 모습에서도 '기억 공략'이 두드러졌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까 한 말이랑 다르잖아"


지난달 28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5차공판에서 이 대표 측은 유 전 본부장이 김 전 처장과 함께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어떤 건으로 대면 보고를 했는지 캐물었습니다.

이재명 변호인 : 무슨 내용을 보고했나요?

유동규 : 그 당시 위례신도시 개발 아니면 대장동이었습니다. 위례 개발 초창기라 보고할 게 많아서.

이재명 변호인 : 공사 측 보고자는 증인과 김문기 씨 뿐이었습니까?

유동규 : 처음에는 둘이었습니다.

이재명 변호인 : 위례신도시 사업과 관련해 증인이 피고인(이재명)에게 여러차례 보고했고, (김문기와) 두 사람이서 보고한 게 여러차례라는 얘기인가요?

유동규 : 처음 간 게 둘이 갔고, 나머지는 여러 사람 같이 갈 때도 있었을 거고 저 혼자 갔을 때도 있었습니다.


-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5차공판

그러자, 이 대표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유 전 본부장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재명 : 하나 물어볼게요. 위례신도시 개발 건을 김문기와 함께 나한테 대면 직보했다고 했어요 아닙니까?

유동규 : 위례 자체 건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김문기와 둘이서 처음에 가서 시장님한테 보고한 건 맞습니다. 위례 관련해서 김문기랑 갔는지는….

이재명 : 아까 한참 위례 관련해서 보고 많이했다 했는데.

유동규 : 위례 관련해서 보고 많이 했는데 김문기와 갔는지는 명확하지 않고요. 저는 시장님한테 여러 차례 보고 했죠.

이재명 : 명확하지 않으면 아니라고 해야지 왜 아까도 수차례 김문기하고 보고했다고 얘기했어요? 답답해서 물어봅니다.

유동규 : 김문기하고 보고는 시장님 재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간 건 맞습니다. 위례 때문에 간 건지는 명확하지 않고….

-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5차공판

이 대표는 '위례신도시 건과 관련해 유동규-김문기의 대면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로 유 전 본부장의 명확하지 않은 기억을 파고든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건 외에도 이 대표는 유 전 본부장의 부정확한 기억을 공격하는 질문을 여러 차례 던졌습니다.

이재명 : 증인이 1천억 원이면 공원 만들수 있다고 들었다는 얘기를 한 녹취록 얘기는 '정진상에게 들은 얘기다'라고 검찰에 진술한 일이 있습니까?

유동규 : 기억나지 않습니다 언제적 진술서입니까 보여주시죠.

이재명 : 허허 증인 기억 묻는 거예요.

유동규 : 몇회 조서인지.

-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5차공판


돈 준 방법도 제대로 기억 못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지난 2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428억 약속·뇌물' 관련 1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같은 '기억 공략'은 이 대표 측근인 정 전 실장과 김 전 부원장 측의 전략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정 전 실장 측은 유 전 본부장이 정 전 실장에게 준 뇌물의 출처와 뇌물 전달 방식이 진술마다 엇갈린다고 공격했고,

정진상 변호인 : 증인은 김용에게 줬다는 1억 원 출처는 김만배에서 남욱으로 변경했고, 정진상에게 줬다는 5,000만 원 출처는 김만배에서 김만배 또는 남욱으로 바꿨다가 법정에서는 다시 김만배로 변경했는데 진술이 수시로 바뀌는 이유가 뭔가요?

유동규 : 수시로 변경했다는 게 맞는 말일 수도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진술에 있어 그 과정들은 사실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부분은 돈 전달한 부분, 그 다음에 장면 그것만 기억납니다. 김만배로부터 대로변에서 5,000만 원 받았을 때 기억은 생생하게 납니다.

정진상 변호인 : 2014년 4월 5,000만 원을 편의점에서 산 검정 비닐 2장에 넣어서 아파트 5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 정진상 집에서 줬다고 진술했다가 쇼핑백에 넣어서 2층 현관 앞에서 줬다고 진술을 바꿨던데요. 뇌물을 준 장소와 방법은 매우 결정적인데 번복한 이유가 뭔가요?

유동규 : 2019년에 정진상 집 5층 올라가서 줬던 부분하고 조금 헷갈렸는데요. 나중에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기억 찾아서 다시 말했던 겁니다. 예전에 (정진상이) 살던 아파트는 복도식이고 방문한 적 있는데 새벽에 형수님이 맥주 꺼내줘서 맥주 한 잔 마시고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돈 전달할 땐 1층 모퉁이에서 줬었습니다.

- 지난 2일 정진상 전 실장 등 뇌물 혐의 7차 공판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사진=연합뉴스)

김 전 부원장 역시 돈을 준 시점과 방식에 대한 기억이 부정확한 걸 노려 직접 질문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김용 : (진술 조서를 보면) 여기 검사가 묻습니다. 김용이 설 지나고 나서 돈 달라고 했다 하니까 시점이 한 두달 내라고. 돈 달라고 하면 시점이 기억나지 않나요, 제가 돈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달라고 했습니까?

유동규 : 잠시만요, 전화했는지 만났는지 기억을….

김용 : 2020년 8월부터 9월경으로 기억한다더니 그럼 돈을 언제 준 겁니까?

유동규 : 본인도 기억하시죠. 받은 사람이 제일 잘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3월 16일 김용 전 부원장 등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 4차 공판


부정확한 기억은 신빙성 없나?

서울중앙지법 (사진=연합뉴스)

이 대표와 측근들이 유 전 본부장의 기억을 물고 늘어지는 건 결국 유 전 본부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유 전 본부장은 검찰 조사 때와 법정 진술, 또는 법정 진술들 간에도 조금씩 진술 내용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 대표 측 전략이 어느 정도 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재판부도 이런 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재판장 : 증인 지금 증언이 왔다갔다하긴 해요. 아까 김문기씨랑 위례사업관련해서 보고헀다고 증언했어요.

유동규 : 제가 위례가 쟁점이었고 김문기가 담당 팀장이었기 때문에 그부분에 대해서는 위례 건 보고한 건 맞기 때문에 말씀드린 거고 다시 말씀드리면 김문기였다는 자체는 김문기하고 보고했다고 생각하지만 김문기가 아닐수도 있을수도 있습니다 보고 자체는….

-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5차공판

이런 부정확한 증언이 과연 이 대표나 측근들에게 유리할까요?

우리 법체계는 증언이 신빙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판단을 법관에게 일임하는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308조 자유심증주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

만약 재판부가 볼때 유 전 본부장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혐의 입증 증명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억의 정확성'보다 중요한 건 '진술의 합리성'

다만,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데 재판부의 주관만 작용하는 건 아닙니다. 오랜시간 쌓인 판례를 통해 갖춰진 논리와 경험법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6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의 '증인신문 절차 및 기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자유심증주의는 법관의 자의에 의한 판단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 논리와 경험법칙의 제한을 받는다, 증언의 취사와 관련한 판단이 경험칙에 위반됐다고 지적한 판례가 다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자신이 진실이라 믿었던 기억의 내용이 사실은 다른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바뀐 상태인 경우도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경험칙상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점, 피고인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진술의 진실성에 대해 피고인이나 변호인으로부터 추궁을 당하게 되면 과연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에 관하여 의심을 품게 되고 이에 따라 모호한 진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큰 점 등을 고려해 진술 내용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사소한 부분에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거나 최초의 단정적인 진술이 다소 불명확한 진술로 바뀌었다고 하여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2006년 11월 23일 대법원

즉, 유 전 본부장 진술 내용이 몇몇 부분에서 엇갈리는 건 8~10년 가량 지난 사건임을 고려할 때 기억이 흐려짐에 따른 일반적인 모습으로 인정될 수도 있는 겁니다.

한 전직 부장판사는 "재판에서 증인의 진술을 들을 때는 기억의 정확성은 큰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고려 대상은 진술 내용의 합리성과 일관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 진술 내용이 대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다면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진술 동기가 합리적'이라고 재판부가 판단한다면 신빙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배신감' vs '검찰 조작'

결국, 유 전 본부장과 이 대표 측의 진실공방은 표면상 유 전 본부장의 기억력을 두고 벌어지고 있지만 이면에는 '진술 동기의 합리성'을 공격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지난 2일 정 전 실장 측은 유 전 본부장에게 "기억 안 나면 안 난다고 하면 될 텐데 검찰에서 원래 그렇게 기억 안 나도 기억을 보충해 떠올려서 조사하느냐"고 물었고, 이 대표 측 역시 유 전 본부장의 검찰 조사에서 한 유 전 본부장 진술을 공격했습니다. 이는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을 두고 '유 전 본부장이 검찰과 짜고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는 합리성을 주장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유 전 본부장은 이 대표를 옹호하던 진술을 번복한 이유로 "이 대표 측이 가짜 변호사를 보내 감시했다"며 '배신감'을 들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거짓으로 이 대표를 옹호했지만 지금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나도 처벌될 걸 각오하고 말하는 건데 거짓일 이유가 없다'라는 진술의 합리성을 주장하는 것이죠. 검찰 관계자도 "진실에 부합하게 진술하고 있는 부분이 있고 객관적인 증거와 맞춰볼 때 충분히 신빙성 있다 판단하고 있다"며 유 전 본부장에게 힘을 싣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일까요? 유 전 본부장과 이 대표 측의 공방을 지켜봤고, 앞으로 다른 증인들의 진술과 물적 증거들을 종합할 때 더 합리적인 주장을 한다고 판단되는 쪽에 재판부는 손을 들어주게 될 겁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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