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해 제정한 '반(反)린치법'의 배경이 된 흑인소년 에멧 틸(1941~1955) 납치·살인사건의 핵심 인물 캐롤린 브라이언트 던햄(88)이 사망했습니다.
AP통신·USA투데이 등 미국 언론은 27일(현지시간) 루이지애나주 당국에 전날 제출된 사망 신고서를 인용해 던햄이 지난 25일 루이지애나주 웨스트레이크의 호스피스 케어 시설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습니다.
던햄은 21세 때인 1955년 8월 미시시피주 소도시 머니에서 "틸에게 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남편 일행의 린치를 유발한 혐의를 받아온 인물입니다.
린치란 정당한 법적 수속 없이 잔인한 폭력을 가하는 일을 뜻합니다.
당시 시카고 소년 틸은 친척들이 사는 머니에 놀러 갔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그는 사촌들과 함께 간 식료품점에서 백인 기혼 여성 던햄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던햄의 남편 일행에게 끌려간 지 사흘 만에 처참히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틸의 어머니는 아들 장례식에서 관 뚜껑을 열어놓고 잔혹하게 폭행당한 아들의 모습을 공개했고, 보도 사진과 함께 사건이 알려지면서 당시 흑인 민권운동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틸 살해 혐의를 받던 던햄의 남편 로이 브라이언트(1994년 사망)와 그의 의붓형제 J.W. 밀람(1980년 사망)은 당시 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던햄은 이 사건과 관련해 체포되거나 기소된 적이 없습니다.
작년 8월 미집행 체포영장과 미공개 회고록이 잇따라 발견된 후 머니 지역을 관할하는 미시시피주 르플로어 카운티 검찰은 뒤늦게 던햄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대배심을 소집했으나 배심원단은 "혐의를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던햄은 지난해 공개된 2008년 인터뷰에서 "틸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았으나 막을 수 없었다"면서 "나도 평생을 사건의 피해자로 느끼며 살았다. 틸 가족을 위해 늘 기도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연방 의회는 작년 3월 '에멧 틸 안티 린칭 법안'으로 이름 붙인 '반린치 법안'을 가결 처리했고 곧이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서명을 마쳤습니다.
이 법안은 형사 처벌 권한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인에게 임의로 가하는 사적 형벌(私刑), 즉 린치를 인종차별 또는 편견에 근거한 증오 범죄로 규정하고 가해자를 최대 징역 30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오은채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oheunchae_pre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