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집계 '학교폭력 발생건수' 2017년 3만1천건 → 2022년 6만3천건
과거 집계 안된 학교장 자체해결 사안까지 포함해 '통계적 착시' 지적
경찰청 학폭 검거자수 2000년 3만2천명 → 2012년 2만4천명 → 2022년 1만4천명
과거 집계 안된 학교장 자체해결 사안까지 포함해 '통계적 착시' 지적
경찰청 학폭 검거자수 2000년 3만2천명 → 2012년 2만4천명 → 2022년 1만4천명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이 나온 다음날인 지난 13일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2017년을 기점으로 해서 학교폭력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언급은 국회 교육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태규 의원이 지난 5일 국회 당정협의회에서 "학폭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7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발언한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학교폭력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기록 보존기간을 늘리고 대학입시 반영을 강화해 '엄벌주의'로 선회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번 학교폭력 대책이, 제재 완화에 따른 경각심 약화로 학교폭력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 기초해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학교폭력은 실제로 2017년부터 급증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과거 언론보도와 '학교폭력의 양상 변화에 따른 처리절차 개선방안 연구'(김승환·박현호) 등 학계 논문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학교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건 약 30년 전부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995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서울의 한 고등학생이 투신자살한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일자, 김영삼 대통령 지시로 가해학생 사회봉사명령제, 학교담당경찰관제, 청소년보호법 제정 등을 추진한 것이 정부의 첫 종합대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도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자 처벌과 규제 위주의 대책에 한계를 느낀 노무현 정부에서 2004년 학교폭력 예방과 대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을 제정하면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중심의 현행 학교폭력 대책의 틀이 갖춰졌습니다.
학교폭력예방법 제정을 전후해 감소하는 듯했던 학교폭력(검거자수)이 다시 증가하는 가운데 2011년 말 대구의 한 중학생이 집단괴롭힘 끝에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명박 대통령 지시로 2012년 2월 한층 강화된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이 마련됐습니다. 이때 학폭위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해 대학입시에 반영하고 학교폭력을 은폐·축소하는 교사를 징계하는 방안이 처음 도입됐으며, 매년 두 차례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학생부 기재를 두고선 낙인효과 등 부작용 우려로 일선 교사들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러자 이명박 정부는 2012년 6월 학생부 작성·관리지침을 다시 개정해 당초 '초·중학교 졸업 후 5년·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으로 정했던 학생부 기록 보존기간을 초·중·고 모두 '졸업 후 5년'으로 완화했습니다.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발표하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 사진=연합뉴스
반면 이듬해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학교폭력 근절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으나 처벌이나 규제보다는 학교에서의 자율적 예방 활동 지원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겼습니다. 정부는 2013년 발표한 '현장 중심 학교폭력 대책'을 통해 학생부 기록 보존 기간을 '졸업 후 2년'으로 줄이되 졸업 직전 심의를 거쳐 기록을 삭제해주는 방안을 도입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자율적 예방 중심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세부 정책을 개편했습니다. 매년 두차례 전수조사 방식으로 실시해온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2018년부터 상반기 전수조사, 하반기 표본조사로 개편했습니다. 또한 정책숙려제를 거쳐 2020년 학폭위를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는 대신 경미한 사안은 학폭위로 넘기지 않고 학교장이 해결하게 하는 '학교장 자체해결제'를 2019년 9월부터 도입했습니다.
이 같은 학교폭력 정책 흐름에 비춰보면 이번 정부에서 마련한 대책은 정책 기조가 자율적 예방에서 이명박 정부 때의 엄벌주의로 회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책은 학생부 기록 보존기간을 현행 '졸업 후 최대 4년'으로 다시 늘리고, 대학입시에서 학생부 위주의 수시전형뿐만 아니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 위주인 정시전형에까지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표] 연도별 학교폭력 피해응답률과 심의건수
사진=교육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2023년 4월) 발췌
교육부가 2012년부터 발표해온 학교폭력 대책과 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해 보면, 그동안 정부가 학교폭력 대책 수립 시 학교폭력 동향을 살피기 위한 정책지표로 삼은 건 '학교폭력 피해응답률'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피해응답률은 매년 상반기(1차) 300만~400만명 규모의 초4~고3 재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와 하반기(2차) 표본조사 방식으로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통해 산출합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피해응답률은 실태조사가 법제화된 후 첫 조사가 이뤄진 2012년(이하 1차 조사) 12.3%로 100명 중 12명 이상이 학교폭력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으나, 2013년 2.2%, 2014년 1.4%, 2015년 1.0%, 2016년 0.9%, 2017년 0.9%로 하락세를 지속했습니다. 그러다 2018년 1.3%, 2019년 1.6%로 반등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수업이 이뤄진 2020년 0.9%, 2021년 1.1%로 낮아졌다 2022년 1.7%를 기록했습니다.
'학교폭력이 감소하다 2017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 같다'는 이주호 장관의 언급은 피해응답률을 근거로 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정확히 말하면 피해응답률은 2016년 0.90%(3만9천명), 2017년 0.89%(3만7천명)로 2017년 역대 최저를 기록한 뒤 2018년부터 2년 연속 반등했습니다.
피해응답률 그래프의 반등 기울기가 가파른지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2018년 처음 반등한 원인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부는 2017년까지 피해응답률이 하향 안정세를 보인 데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과 인식 수준이 높아진 결과라고 분석해왔습니다. 그러다 2018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자료에선 "피해응답률 증가는 학교폭력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작년 말 학교폭력 사안의 연속 언론 보도, 예방교육 강화 등에 따라 학교폭력에 대한 학생들의 민감성이 높아진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2012~2022년 학교폭력 심의건수 추이 / 사진=교육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2023년 4월) 참조
학폭위에 회부된 학교폭력 사건을 집계한 '학교폭력 심의건수' 추이도 이 같은 분석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심의건수 증가율은 2017년 32.0%로 2016년 18.6%보다 커졌다 2018년 4.5%로 둔화됐습니다. 2017년 하반기 집중된 학교폭력 사태가 이듬해 반영된 피해응답률과 달리 심의건수에선 당해(2017년)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교육부 자료를 취합하면 학교폭력 심의건수는 학폭위가 활성화된 2012년 2만4천709건에서 2013년 1만7천749건(증감률 -28.2%)으로 줄었다 이후 2014년 1만9천521건(10.0%) 2015년 1만9천968건(2.3%), 2016년 2만3천673건(18.6%), 2017년 3만1천240건(32.0%), 2018년 3만2천632건(4.5%)으로 증가세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학교장 자체해결제'가 도입되기 시작한 2019년 3만1천130건(-4.6%), 2020년 8천357건(-73.2%)으로 줄다 2021년 1만5천653건(87.3%), 2022년 2만3천602건(50.8%)으로 다시 증가했습니다.
학생이나 학부모의 학교폭력 신고 빈도를 보여주는 학폭위 심의건수 추이를 보면 피해응답률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2년 학교폭력 종합대책 발표 후 수년간 피해응답률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동안 심의건수는 상승 곡선을 그렸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교육부는 피해응답률과 달리 심의건수로 보면 학교폭력이 증가했다는 야당 지적에 "일선 학교에서는 사소한 괴롭힘도 범죄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상황"이라며 심의건수만으로 학교폭력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2022년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발생건수/ 사진=교육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2023년 4월) 참조
현 정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학교폭력 종합대책에는 '학교폭력 발생건수가 2017년부터 급격히 상승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는 '학교폭력이 2017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이태규 의원의 발언과 유사합니다. 이 같은 분석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이번 교육부 대책 자료를 살펴보면 연도별 '학교폭력 발생건수'를 비교하면서 2018년까지는 학폭위 심의건수만을 기준으로 삼은 반면 '학교장 자체해결제'가 도입된 2019년부터는 심의건수에 '학교장 자체해결 건수'를 더해서 집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학교폭력 발생건수는 2018년 3만2천632건(증감률 4.5%)에서 2019년 4만2천706건(30.9%), 2020년 2만5천903건(-39.3%), 2021년 4만4천444건(71.6%), 2022년 6만3천41건(41.8%)으로 증가세가 가팔라집니다.
학교장 자체해결 사안도 법상 처리 방식만 달라졌을 뿐 신고 접수된 학교폭력 사건이기 때문에 학교폭력 발생건수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입니다.
반면 교원단체와 지역교육청에 문의하자 학교장 자체해결 사안을 새로 발생한 학교폭력으로 간주하는 건 일종의 통계적 착시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민석 전국교직원동조합 교권상담국장은 "학교장 자체해결제 도입 전에도 사소한 사안은 학폭위로 넘기지 않고 담임종결이나 학교장 종결로 처리한 사례가 많았지만 통계로 잡히지 않았던 것뿐"이라며 "학교장 종결이 입법화되면서 사소한 것까지 보고하고 통계로 잡히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2012년 학교폭력 종합대책에서 학폭위 조치의 학생부 기재를 의무화하면서 경미한 사안은 학폭위에 넘기지 않고 담임교사가 지도한 뒤 종결할 수 있게 대응지침(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을 마련해 시행했습니다. 그러다 공정성 시비가 일자 박근혜 정부는 2015년부터 대응지침에서 '담임교사 종결' 절차를 삭제하고 학교폭력 사안은 반드시 학폭위에 회부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과거 언론 보도와 교육청 자료 등을 보면 이후로도 일선 학교에선 신고 접수돼도 조사 결과 학교폭력으로 볼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학폭위에 회부하지 않고 종결 처리하는 '학교장 종결' 사례들이 적지 않았고 서울시교육청, 전북도교육청 등 지역교육청에서 이를 권고하기도 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학교장 자체해결제'는 이를 법령에 의해 뒷받침되는 제도로 양성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신 학교폭력예방법에 자체해결 사건은 지체 없이 학폭위에 보고하도록 명문화했습니다.
[서예림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ylanastasia776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