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로부터 '뒷돈' 10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1심에서 검찰이 구형한 3년보다 높은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씨가 받은 명품 가방 등을 몰수하고 9억 8,000여만 원의 추징금도 명령했습니다.
통상 선고 형량은 구형보다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결과입니다.
오늘(14일)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대통령비서실장·중소벤처기업부장관·국회의원 등 정계 인맥을 과시하며 사업가 박모씨에게 접근했습니다.
이씨는 2018년부터 2022년 1월까지 정부지원금을 배정하거나 마스크 사업 관련 인허가를 해준다는 명목으로 사업가 박모씨에게 9억 4,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습니다.
2021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비용 명목으로 3억 3,0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도 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수천만 원의 세금을 체납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비용을 고심하던 중 박씨를 만났습니다.
이씨는 "모 장관을 언니라고 부른다", "내 뒤에 청와대 인사가 있다"는 등 정치권 인맥을 과시하며 자신을 '스폰'해 달라고 적극 요구했습니다.
실제 이씨는 모 기관 처장에게 전화해 "잘 좀 부탁한다"고 말하고 국회의원에게 전화해 "편의를 봐달라"고 말하는 등 일부 알선을 실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씨가 준 돈이 실제 청탁 대상자까지 전달됐는지 여부는 판결문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이씨는 박씨를 '오빠'라 부르며 백화점에서 명품백이나 운동화를 사달라고 요구하기도 하는 등 대담하게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박씨는 법정에 출석해 "젊은 사람들 말처럼 빨대 꽂고 빠는 것처럼 돈을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씨는 수억 원의 돈을 '선물' 받은 거라 주장하며 범행을 부인했고 심지어 증거인멸까지 시도했습니다.
문자·통화내역 등의 증거가 확실한데도 이씨는 일부 범행만 인정하면서 "대부분의 돈은 박씨가 스스로 도와준 것"이라 말했습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씨는 박씨에게 허위 채무 확인서를 요구하고 언론인과 정치인을 동원해 사건을 무마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재판부는 "정·관계 인맥을 과시하면서 자신이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실제 일부 알선 행위 실행까지 했다"며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증거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 범행을 부인하는 등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씨는 지난 3월 최후변론에서 "벌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보석도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고 직전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일각에선 검찰이 예상보다 낮은 형을 구형하면서 일종의 '플리바게닝'(유죄협상)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씨가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형량을 낮춰주는 겁니다.
검찰은 이씨의 1심 선고가 진행된 그제(12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관석, 이성만 의원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 20여 곳을 압수수색했습니다.
검찰은 이씨의 휴대전화 녹취 파일을 분석하던 중 "봉투 10개가 준비됐으니 윤 의원에게 전달해달라"고 말한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이씨의 휴대전화 등에서 확보한 소위 '이정근 리스트'를 통해 야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오은채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oheunchae_pre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