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집트 정부, 심각한 경제난 속 국민에게 "배고프면 닭발 먹어라"
입력 2023-03-20 13:45  | 수정 2023-03-20 13:53
"이집트 정부, 경제난에 '닭발' 먹어라" 권고/ 사진 = 연합뉴스

하늘이시여, 제발 우리가 닭발을 먹게 되지 않게 하소서.”

대피라미드로 유명한 이집트 수도 카이로 교외 기자시(市)의 가금류 매장 주변에서 구걸하던 한 남성이 내뱉은 말입니다. 영국 BBC 방송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 이집트 정부가 국민에게 닭발 섭취를 권했다가 거센 역풍에 직면했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한국 등 아시아권에서와 달리 이집트에서 닭발은 식재료로 쓰이기보다는 반려견이나 반려묘의 사료 등을 만드는데 주로 쓰이는 재료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물가가 올라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런 닭발을 단백질이 많은 부위라며 홍보한 것이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고 BBC는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1월에도 국민들에게 닭발도 버리지 말고 먹으라고 당부한 바 있습니다. 치솟는 물가 때문에 가족들의 배를 불리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평소 꺼리던 닭발이라도 먹으라는 권고였습니다.


아예 영양학적 조언도 곁들였습니다. 단백질이 풍부하니 돼지 등을 먹지 않아 평소 개와 고양이에게 던져주던 이슬람 신도들에게 훌륭한 대체 음식이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권고가 오히려 굶주림으로 성난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했습니다. 이달 이집트의 물가 상승률은 30%를 넘어서며 역대 최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최근 이집트에서는 식용유와 치즈 등 기본 식재료 가격이 지난 몇 달 사이 2∼3배가 올라 편하게 사 먹을 수가 없는 식재료가 되었습니다. 몇 달 사이 가격이 곱절이나 세 배 이상 뛰어오른 식품도 제법 있었습니다.

특히, 육류 가격이 많이 올라 식탁에서 고기 구경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원성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세 자녀의 엄마인 60대 주부 웨다드는 한달에 한 번 고기를 먹었는데 이제는 전혀 사지 못한다. 일주일에 한 번 닭고기를 산다. 요즘은 계란 한 알에 5이집트파운드(약 212원)나 된다”고 말했습니다.

시장에서 견과류를 사는 이집트 여성/ 사진 = 연합뉴스

이집트가 특히 어려움에 처한 것은 1억명 이상의 인구를 먹여살리기에 이집트내 농업으로는 부족해 많은 식료품을 해외 수입에 의지하는 탓입니다. 심지어 닭에게 먹이는 곡물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아울러 지난 한 해 동안 이집트파운드의 미국 달러의 교환 가치가 절반으로 뚝 떨어지며 이집트 정부는 또다시 이집트파운드의 가치를 평가절하했는데, 이 바람에 곡물 수입가가 급등했습니다.

또 작년 1월 기준 달러당 15 이집트 파운드였던 환율은 1년 만에 달러당 32.1 이집트 파운드까지 떨어지면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습니다. 20일 현재 달러당 이집트 파운드 환율은 30.3입니다.

압둘 파타흐 알시시 대통령은 2011년 이집트 시민봉기와 급격한 인구 증가,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리기에 바쁜 모습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밀을 수입하는 이집트로선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 사실입니다. 세계 밀 수출량의 약 29%를 차지하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해 국제 곡물시장에 대한 밀 공급이 급감하자 타격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관광은 이집트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데,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 19 유행 여파 등으로 관광업까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매달 5천 이집트 파운드(약 21만원)를 연금으로 받는다는 웨다드는 1년 전만 해도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겼지만, 현재는 먹고 사는 것조차 빠듯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닭고기를 사기 위해 잔돈을 긁어모았다며 "한 상인은 닭 살코기를 1㎏에 160 이집트 파운드에 판다고 했다. 175, 190, 200 이집트 파운드까지 부르는 사람도 있다"면서 "반면, 닭발은 20 이집트 파운드밖에 안 한다"며 실소를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정부 실책도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싱크탱크 타흐리르 중동정책연구소의 정치경제 애널리스트인 티모시 칼다스는 시시 대통령 재임 기간 대통령실과 군부, 보안정보 분야의 권력과 영향력이 커졌다며 정권이 소유한 기업들이 막대한 인프라 프로젝트를 수의계약하곤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결과 민간 부문이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정권 소유 기업들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많은 해외 투자자들이 이집트를 떠나고 있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이집트에 지난 6년 동안 네 차례나 구제금융을 지원했습니다. 현재 정부 세입의 절반 가량이 이 부채들을 상환하는 데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GDP의 90%에 이릅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걸프만 국가들은 정부 자산을 사들여 돕는 대신 이를 빌미로 더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투자하고 있습니다. 서구와 걸프만 이웃 나라들 모두 중동 최고의 인구 대국이 붕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과거 경제난은 봉기를 불러 호스니 무바라크, 무함마드 모르시 정권을 붕괴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애널리스트들은 이집트에서도 전과 같은 위기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 주부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많은 이들이 본 동영상을 통해 우리 여자들이 당신에게 한 표를 행사한 날을 ‘블랙 데이라 여기며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당신이 우리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고 개탄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먹일 것이 없어 걱정하는 날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오는 23일부터 라마단 금식이 시작됩니다. 해마다 새벽부터 황혼까지는 금식하지만 해가 진 뒤에는 두 끼니를 거른 것을 보상하듯 성대한 식탁을 꾸리곤 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힘들어 보입니다.

웨다드는 올해는 뭘해야 하느냐”고 되물은 뒤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닭도 곧 식단에서 사라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겨우 렌틸콩 죽이나 끓일 수 있으려나” 라고 걱정을 전했습니다.

[김누리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r5026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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