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할머니 경찰 출석…"부실 조사로 누명"
입력 2023-03-20 12:33  | 수정 2023-03-20 13:32
"국과수, 하드웨어만 검사…자동차 제조사에 면죄부 주려해"
지난해 12월 사고 당시 모습/ 사진 = 강릉소방서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60대 할머니가 첫 경찰조사에 출석했습니다.

할머니 A(68)씨와 그의 아들, A씨의 변호와 급발진 사고 민사소송 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는 사고 이후 세 달여 만인 20일 오전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강릉경찰서를 찾았습니다.

경찰 조사에 들어가기 전 하 변호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반드시 해야 할 소프트웨어 결함은 분석하지 않고 하드웨어만 검사하는 부실 조사를 통해서 할머니에게 누명을 씌우고, 자동차 제조사에는 면죄부를 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급발진 사고는 자동차의 주 컴퓨터인,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의 결함에 의해서 발생하는데 국과수에서는 이를 전혀 분석하지 않고, 사고기록장치(EDR)만 분석했다"며 "다시 소프트웨어를 분석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ECU가 오작동해 가속 명령을 내리게 되면 하부에 연결된 EDR은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음에도 '전혀 밟지 않은 것'으로 잘못 기록하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하 변호사는 사고 5초 전 차량의 속도가 110㎞인 상태에서 분당 회전수(RPM)가 5천500까지 올랐으나 속도가 거의 증가하지 않은 사실과 '가속 페달을 밟았다'는 국과수의 EDR 검사 결과가 모순되는 점을 들어 급발진이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정상적인 급가속과 급발진의 엔진 소리가 다르다는 자동차 학계의 논문, 미국에서 실시한 인체 공학적 분석 결과에 의하면 가속 페달을 잘못 밟는 '페달 오조작' 사례는 7천여 회 중에 단 2회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도 변호인 의견서에 포함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특이점으로 사고 전 '전방 추돌 경고'가 울렸음에도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가 작동하지 않은 점을 꼽으며 이를 검사하지 않은 국과수의 검사 결과를 부정했습니다.

A씨의 아들이자 숨진 아동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다시 기억해내야 할 끔찍한 아픔과 기억, 고통의 아픔이 이번 조사 한 번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며 "전국에서 보내온 처벌불원 탄원서 7천296부를 경찰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가 기존의 사례들처럼 운전자 과실로 끝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머니는 죄가 없다는 것"이라며 "급발진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끊임없이 제조사와 싸우는 힘 없는 소비자들을 대변해서 관련법이 꼭 개정됐으면 한다"고 바랐습니다.

한편, 지난해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할머니가 손자를 태우고 운전한 SUV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12살 손자가 숨졌습니다.

운전자였던 고(故)이도현 군의 할머니도 크게 다친 상태였지만 곧바로 형사 입건되었고, 자동차의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고라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이후 이도현 군의 아버지인 이상훈씨가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린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5만 명이 동의했습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관련법 개정을 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권성동 국회의원은 지난 6일 개인SNS에 사고 유가족을 만난 사실을 언급하며 "이번 비극의 실체를 규명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법 개정을 비롯한 제도적 개선에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습니다.

권의원은 "8년간 손자를 안전하게 차량으로 데리고 다니던 할머니는 차량의 비정상적 가속으로 인해 큰 사고를 당해 12살 된 손자가 숨졌고 할머니 역시 중상을 당했다"며 "운전자 할머니의 건강 상태와 운전 습관 등을 고려했을 때 고의 또는 과실로 비정상적인 가속을 했을 확률은 낮다고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고 전후로 발생한 비정상적인 굉음과, 과도한 연기, 배기관에서 배출된 다량의 액체 등 소위 '급발진 사고'로 추정되는 정황들이 확인되고 있다"며 "자동차 내 사고기록장치(EDR)에는 제동장치가 작동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스키드 마크가 영상에 찍히는 등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런데도 할머니는 교통사고특례법상 형사 입건된 상황"이라며 "유가족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더 이상 길어져서는 안된다. 사법당국의 합리적 판단을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이 사고와 관련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5만명이 동의한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에 대해 언급하면서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에 대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5만명이 넘어서 정치가 답을 드려야한다"며 향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김누리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r5026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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