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전용면적 59㎡ 아파트가 지난 달 10일 4억 5천만 원에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실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는 일주일 뒤 4억 3천만 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습니다. 매수인이 임차인으로부터 받는 전세보증금에 자신의 돈을 보태 잔금을 치르는 전형적인 갭투자 방식입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이죠. 매수인이 송도 아파트를 사는데 들어가는 돈은 취득세를 제외하면 2천만 원에 불과합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갭투자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부동산빅데이터 업체인 아실에 따르면 경기 화성시에서는 최근 3개월 간 77건의 갭투자가 이뤄졌습니다. 수도권 시군구 중 가장 많습니다. 이어 경기 평택시(53건), 인천 연수구(53건), 경기 남양주시(43건), 수원시 영통구(41건) 순입니다. 아실은 아파트를 매매한 뒤 직접 거주하지 않고 3개월 안에 전·월세 계약을 체결하면 갭투자로 분류합니다.
갭투자 상위 지역을 보면 대부분 수도권 외곽 도시들입니다. 왜 일까요? 매매와 전세가격 차이, '갭'이 작은 게 이유입니다. 직장, 자녀 양육 등의 문제로 매매·전세 수요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투자가치를 일반적으로 낮게 평가해 서울권보다 매매-전세가격 격차가 크지 않습니다. 특히, 화성이나 인천 연수, 수원 영통 등은 집값 상승세가 가팔랐던 만큼 최근의 하락폭도 커 갭투자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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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에 필요한 돈이 실제로 얼마나 줄었는지 확인해 볼까요? 화성 병점동의 한 전용면적 75㎡ 아파트의 경우 지난달 5일 3억 원에 팔린 직후 보증금 2억 7천만 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매수자 실투자금은 취득세 제외 3천만 원이죠. 그런데 이 주택형의 최고가는 21년 7월 4억 1,700만 원이었습니다. 당시 전세 시세가 1억 9천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까, 산술적으로는 갭투자 하는 데 2억 원이 넘게 들어갑니다. 채 2년도 안 되는 시기에 2억 원에서 3천만 원으로 뚝 떨어진 겁니다. 일반적으로 주택가격 급락기에는 전세가격보다 매매가격이 더 빠르게 떨어져 매매-전세 갭이 줄어듭니다.
돈이 덜 든다고 해도 집값이 더 내려갈 것 같으면 움직이지 않겠죠. 그래서 갭투자가 증가했다는 건 집값이 충분히 떨어졌다고 판단한 '발 빠른' 소액 투자자가 늘어났다는 걸 의미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가파르게 뛰던 미국 기준금리에 속도 조절 가능성이 제기된 점도 이들을 움직이게 한 신호로 작용한 듯합니다.
시장경제 체제가 대한민국의 근간인데, 당장 들어가서 살지도 않을 건데 왜 집을 사느냐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집값이 오를 것 같아 일단 집을 매수하긴 했는데, 이사 시점이 맞지 않아 전세 한번 놓고 입주하려는 수요자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번 빌라왕 사태에서 드러났듯 자기돈 거의 들이지 않는 이른바 '무갭투자'로 수십채, 수백채 씩 사들이는 행태는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또, 2년 이하 '단기 갭투자' 역시 임차를 불안정하게 하고 시장을 혼탁하게 할 수 있어 양도소득세율을 다시 높이는 등 억제책이 필요합니다. 전세가격이 내려가면 자금을 추가 조달해야 하는 만큼 전세가 흐름을 잘 살펴야 합니다.
다만 갭투자가 전세 공급의 한 축으로, 침체기에 거래를 되살리는 트리거로서의 역할을 하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갭투기'가 아닌 장기보유 '건전한 갭투자'로의 유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부동산 핵심클릭이었습니다.
[ 김경기 기자 goldgame@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