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가 있는’ 영화였다
우연하게 복싱부가 된 오합지졸들이 오합지졸인 줄 알았던 선생을 만나면서, 자신들이 오합지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만덕(고규필)의 대사처럼 그들이 좇는 의미가 있는 일”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 모든 게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이라는 것이 놀랍다.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라고 이 영화를 평가했다가는 큰 코 다치게 만드는, 복싱처럼 한 방이 있는 영화다.※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지만 불명예 은퇴한 뒤, 지금은 고향 진해에서 고등학교 선생이 된 ‘시헌(진선규). 조작된 승부로 인해 기권패를 당한 ‘윤우(성유빈)의 경기를 본 그는 학교에 복싱부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시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자들이 세상을 향해 강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그 과정에서 선생과 학생 모두 투덜대지 않고, 핑계 대지 않고 자기만의 승부에 나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헌 또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영화 ‘카운트는 비운의 금메달리스트라는 과거를 뒤로 하고 교사이자 감독으로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도전했던 1988년 서울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선수의 일화에 각종 에피소드를 더해 만들었다. 실력은 최고지만 승부 조작 때문에 일찌감치 희망을 접은 복싱 유망주 ‘윤우, 양아치가 되기 싫어 복싱을 시작한 ‘환주(장동주), 소심한 성격의 ‘복안(김민호), 그리고 문제적 3인방 ‘가오(이종화), ‘조디(최형태), ‘복코(추정훈)까지 우연한 기회로 복싱부가 된 이들이 선생 ‘시헌과 티격태격하는 이야기가 극의 재미를 끌고 간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며 심지어 학부모의 항의와 교장의 훈계 앞에서도 의지를 꺾지 않는 일명 ‘미친개로 유명한 시헌은 그러나 어린 나이에 불공평한 세상에 상처 입고 꿈이 꺾인 윤우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고, 주먹부터 앞서는 혈기 왕성한 환주에게 페어플레이 정신을 알려주며, 두려움이 많은 복안에게 용기를 준다.
‘범죄도시의 조선족 조폭, ‘극한직업의 마약반 형사, ‘승리호의 우주쓰레기 청소선 기관사, ‘공조2: 인터내셔날의 범죄조직 리더에 이르기까지 매 작품 다양한 캐릭터를 넘나든 진선규가 주인공 ‘시헌 역을 맡았다. 진선규는 자신의 실제 고향인 진해에서 ‘고향 버프를 제대로 받은 생동감 넘치는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그만의 섬세한 에너지로 고민하고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도 의지를 꺾지 않는 시헌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연기해낸다. 초반 다소 지루하게 흘러가던 영화는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지만 그렇다고 양아치는 되기 싫어 복싱을 시작한 ‘환주(장동주)가 등장하며 속도감을 띤다. 영화 ‘정직한 후보에서 국회의원 ‘주상숙의 아들로 등장해 신인답지 않은 능청스러운 연기력을 선보였던 장동주가 한번 꽂히면 끝장을 보는 과몰입러 환주로 등장해 젊은 에너지를 가득 채운다.
승부 조작으로 억울하게 패하며 복싱에 대한 꿈을 접고 독기만 남은 ‘윤우 역은 최근 ‘마녀 Part2. The Other One, ‘장르만 로맨스 등에 출연한 배우 성유빈이 맡았고, ‘미친개 시헌을 순한 양으로 만드는 아내 ‘일선 역은 최근 ‘장르만 로맨스로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오나라가 맡아 현실 부부 케미를 보여준다. ‘시헌의 고등학교 시절 스승이자, 현 직장 상사인 ‘교장 역에는 영화뿐 아니라 연극,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무대에서 특유의 개성을 쏟아내는 배우 고창석이 맡았다.
전체 배우들이 강도 높은 복싱 훈련으로, 실제 선수 같은 싱크로율을 만들어냈으며 레트로풍의 프로덕션도 실제감을 잘 살렸다. 잠깐은 포기하지만, 결국은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주인공이 제자들과 함께 세상을 향해 묵직한 카운트 펀치를 날리는 영화다. 욕이나 폭력, 화장실 유머로 끌고 가는 대신, 배우들의 연기력과 케미에서 비롯되는 웃음 폭탄과 함께 강력한 메시지 한 방을 묵직히 날린다. 일단, 무엇보다 재미있다. 러닝타임 109분.
[글 최재민 사진 CJ ENM, 필름케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0호(23.3.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