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법원의 시간' 이재명…"핫하게 붙고 쿨하게 인정하자" [서초동에서]
입력 2023-03-04 09:00 
◇ '검찰의 시간' 마무리…이제는 '법원의 시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됐습니다. 어제(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의 첫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위례·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성남FC 후원금 사건과 관련해서는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가운데 검찰은 다음 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바야흐로 '법원의 시간'이 열린 겁니다.

◇ '오랑캐' 발언까지…모든 혐의 '극구 부인'하고 보는 정치인

최근 이 대표는 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달 23일 간담회에서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를 털어낼 방안이 있느냐'는 언론 질문에 "국경을 넘어 오랑캐가 불법적 침략을 계속하면 열심히 싸워서 격퇴해야 한다"며 검찰을 '오랑캐'에 빗대기까지 했습니다.

표현이 선을 넘었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긴 했지만, 정치인들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 모든 의혹을 일단 부인하고 오히려 검찰에 화살을 돌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수도권의 한 차장 검사는 "초임 검사 시절부터 선배들에게 정치인들은 절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그래야, 유죄를 받더라도 사면을 받아 정치적 재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 배임죄·제3자 뇌물죄, 법정 공방 치열할 듯

대장동 의혹의 핵심인 '배임죄'는 구성 요건이 모호해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기 마련입니다. 성남FC 사건의 '제3자 뇌물죄'도 대가성뿐 아니라 부정한 청탁을 입증해야 해 유죄를 인정받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수사팀 관계자들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며 자신만만해하지만, 이 대표 측도 재판에 가면 '무죄'를 받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른 법조인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이들이 구체적인 사건 기록을 보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유무죄에 대한 전망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 길은 하나입니다. 재판에서 다퉈 승리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재판은 피고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3심제로 운영됩니다. 한 사건에 대해 세 번까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재판마다 법원의 종류가 달라지고, 재판부도 바뀝니다. 피고인이 억울하게 유죄를 받지 않도록 시스템을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민주당이 현재 상황에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인 공세에 불과하지만,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면 일거에 판세가 뒤집힐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 "한명숙·조국 사건 겪으며 민주당 망가져"

교과서에 나올 법한 당연한 얘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건을 보며 과거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수수 건이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5년 8월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한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만장일치로 한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당시 당 대표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며 "정치검찰을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고 말하며 오히려 법원을 비판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는 한 전 총리 수사 당시 모해 위증 교사 의혹이 불거지자 당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했습니다. 당시 이를 지켜보던 검찰 관계자는 "적어도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면 사실 관계에 있어서는 승복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민주당이 한 전 총리 사건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의 일가에 대한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1심과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자 당시 청와대에는 재판부를 탄핵해야 한다는 국민청원 글이 올라왔습니다. 한 법조인은 "한명숙 전 총리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사건을 거치면서 민주당이 망가졌다"고 개탄했습니다.

◇ "무죄 나오면 대통령"…"핫하게 붙고 쿨하게 인정하자"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이후 많은 정치인이 이 대표에게 불체포특권에 기대지 말고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라는 주문을 공개적으로 내놓았습니다. 이 대표와 각을 세우는 여당이나 비명계 정치인뿐 아니라 야권의 원로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 대표 측에서는 "판사들을 어떻게 믿느냐"는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정성호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이 대표는 국민을 믿고, 사법부를 믿고 의연하게 가면 된다…재판 결과 무죄가 나오면 대통령 되는 거고, 유죄가 나오면 어려운 것 아니겠나" (지난 1월 26일, 중앙일보)

눈에 띈 건 '사법부를 믿고'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일단 재판에 넘겨진 이상 전쟁터는 법원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최근들어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오히려 대한민국 형사 사법 체계를 흔드는 일이 너무 잦아진 것 같습니다. 이번엔 재판에서 핫하게 붙고 쿨하게 인정하기를 바라 봅니다.

[이성식 기자 mods@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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