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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Pick] 네포 베이비(nepo baby), 부와 명예의 대물림
입력 2023-02-24 10:15  | 수정 2023-02-24 10:18
사진 픽사베이
네포티즘과 수저계급론
‘네포 베이비nepo baby, 얼마 전부터 미국을 뜨겁게 달군 용어다. 틱톡에서 1억 개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 말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2세를 뜻한다. 로또를 사는 사람들 역시 그 당첨 확률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산다. 그러나 수백 번의 로또 1등 당첨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타고난 금수저들로, 그 2세들 역시 부모의 후광으로 단박에 유명인이 된다. 불공평하다고? 세상은 원래 그렇다.

이망생,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을 불러일으키는 ‘네포 베이비

#1. 드라마 ‘대행사. 그룹 오너의 딸인 강한나는 계열사인 광고대행사 상무가 된다. 첫 출근 날, 강한나는 옷을 고른다. 미니스커트에 요란한 색이 배합된 의상으로 기업의 상무 룩과는 거리가 있다. 그녀의 모습을 본 할아버지 왕회장이 혀를 찬다. 그러자 강한나는 내가 왜 머슴 옷을 입어. 나답게 입어야지”라 말한다. 그렇다. 강한나에게 직장인들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는 임원은 ‘그저 상무 나부랭이일 뿐이다. 왜? 그녀는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오너가의 일원, 즉 타고난 금수저니까.

#2. ‘회빙환 즉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전형적인 웹소설의 공식을 보여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역시 재벌 순양가를 다룬다. 회빙환으로 순양가의 ‘4-2가 된 진도준. 그의 고모 진화영은 순양가의 금지옥엽 딸로 백화점 대표이다. 경영 능력이라고는 1도 없는 진화영의 잘못된 판단으로 백화점은 1400억 원을 날리고, 백화점 밖에서는 납품 대금을 달라는 하청업체의 시위가 한창이다. 그래도 진화영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진도준은 속으로 말한다. ‘고모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건 딱 하나, 고모가 순양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건 고모 능력이 아녜요. 행운이지,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행운.

전 세계의 네포 베이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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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세 드라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은 말한다. ‘부를 상속받은 나, 가난을 대물림받은 너. 우린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서도 다른 세계에 산다. 전생과 이번 생만큼이나 먼 궤도에서. 즉 요즘 세대들이 자주 쓰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슬픈 자조가 드라마 서사의 밑에 깔려 있다. 미국의 전미프로풋볼NFL에서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우승으로 이끈 감독 베리 스위처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3루에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이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라고. 전형적인 금수저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다.
네포 베이비nepo baby는 얼마 전부터 미국을 뜨겁게 달군 용어다. 틱톡에서 1억 개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 말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2세를 뜻한다. 즉 ‘부모 찬스로 시작부터 남들과 다르게 더 높은 점프가 가능한 이들이다.

그 시작은 HBO드라마 ‘유포리아의 배우 모드 아패토우이다. 한 시청자가 트위터에 ‘모드 아패토우의 부모는 배우 레슬리 만과 감독 주도 아패토우이다라고 올리면서다. 그러면서 이 ‘네포 베이비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들의 실체를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다. 일테면 조니 뎁과 바네사 파라디의 딸 릴리 로즈 뎁이 자신의 ‘모델로서의 성공, 일테면 샤넬의 뮤즈가 된 것 등이 오로지 노력 때문이다고 하자 톱 모델인 비토리아 세레티가 ‘넌 아무 노력 없이 너무나 쉽게 유명해졌지.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저격하면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일반인의 눈에도 모델로서의 특성이 딱히 없는 릴리 로즈 뎁이 샤넬의 런웨이에 설 수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부모의 유명세 덕분이라는 것이다. 또 있다. 세계적인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아들 브루클린 베컴이 인스타그램에 요리 사진 몇 장 올리고 셰프로 인정받자 사람들은 비웃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재능이 따라주지 않았고 이어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이 역시 능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배우 스티븐 볼드윈의 딸인 헤일리는 ‘네포 베이비nepo Baby라는 문구가 적힌 티를 입고 나타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나 가수 혹은 제작자의 2세들이 부모의 유명세 덕분에 별다른 노력과 재능 없이 각 분야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미국의 젊은 세대들도 부정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그들 모두가 재능과 노력이 없이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일부 ‘네포 베이비들은 ‘내가 태어나 보니 부모가 그런데 어쩌라는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또 ‘네포 베이비라는 따가운 시선에서 탈피하기 위해, 또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네포티즘은 ‘족벌주의의 다른 말

‘네포 베이비는 ‘네포티즘nepotism에서 유래된 말이다. 네포티즘은 ‘조카nephew와 편애favoritism의 합성어로 친족, 족벌에 대한 애정과 후원을 말한다. 이 말의 시작은 중세 유럽의 고위 성직자에서 시작되었다. 자식을 둘 수 없었던 성직자들은 자식 대신 조카에게 고위직을 주기 시작했고 이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야사에서는 고위 성직자들이 부정한 관계로 낳은 혼외 자식을 조카로 둔갑시켜 고위직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교황 칼릭투스 3세는 조카 두 명을 추기경에 임명했고 그중 한 명은 후에 교황이 되었다. 바로 알렉산더 6세이다. 한마디로 ‘낙하산 인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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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세 교회에서 시작된 네포티즘은 현대에 들어와 ‘대물림으로 변화되었다. 부모나 가문의 부와 명예의 대물림인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금수저 혹은 낙하산 인사에 대한 염려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대물림은 현대에 들어와 생긴 현상도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족의 후예는 왕족, 귀족의 후예는 귀족이고 양반과 평민, 천민의 구분 역시 개인의 능력과 자질이 아닌 순전히 혈통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들, 특히 MZ세대들의 눈에는 그렇게 수백 년 동안 당연하게 여겨지던 ‘부모 찬스가 공정과 정의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SNS 세상에서 파급력이 큰 셀럽들의 존재가 이 문제를 더욱 부각시켰다. 단순히 부모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그들, 네포 베이비들은 단숨에 영향력 있는 셀렙으로 등장했으며, 이는 SNS 세상만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도 엄연히 그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네포티즘에 대한 관심은 족벌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 오로지 능력과 노력만으로 밑바닥에서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야 하는 능력주의자들은 족벌주의가 당연시되고 또 그것이 능력주의를 넘어서는 순간 세상은 ‘노력이 아닌 ‘혈통으로 지배된다고 본다. 할리우드의 약 150년 역사 동안 네포 베이비가 지금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할리우드, 어쩌면 미국 사회를 지배한 관행이었다. 미국의 유력하고도 영향력 있는 가문들, 케네디 가문, 클린턴 가문, 부시 가문 그리고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이 네포티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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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미국 정치가에 선풍을 몰아친 케네디 대통령은 깜짝 인사를 발표했다. 바로 법무장관에 35세의 풋내기 변호사인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임명한 것. 정계는 발칵 뒤집혔고 특히 케네디 형제가 ‘텍사스 촌놈이라고 무시했던 린드 존슨 부통령의 반발은 거셌다. 로버트 케네디와 앙숙이 된 린드 존슨은 케네디의 암살 이후 제36대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그는 1967년 미 연방법 3110조를 의회에 요청해 제정한다. 이 법은 ‘공직자는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컨트롤 할 수 있는 자리에 친인척을 임명해서는 안된다이다. 이는 네포티즘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법이다. 존슨의 케네디 형제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한 법이다. 이 법이 다시 미국 여론의 중심에 선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 때이다. 그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트럼프의 정권인수위원회에 입성하고 곧 백악관 선임 고문으로 임명되면서다. 쿠슈너는 ‘무보수로 근무하겠다고 했지만 당시 정가와 여론에서는 ‘신 네포티즘의 부활 논란이 일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 2세들이 미디어에 가감없이 노출된다. 물론 그들 모두 단순히 부모의 후광만으로 그 자리에 선 것은 아니다. 노력도 하고, 타고난 재능도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기 때부터 유명한 부모와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일부에서는 이를 향해 ‘연예인 2세의 데뷔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신의 손은 어떤 수저를 쥐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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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 계급론, 이는 2010년대 이후 슬슬 고개를 내밀다 2015년경 본격적으로 온라인 커뮤티티를 통해 한국 사회의 화두로 등장했다. 당시에는 수저를 나누는 것도 단순했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로 마치 올림픽 금은동 메달과 같은 구분이었다. 물론 이는 한국 사회만의 특별함은 아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수저 계급론이 먼저 화두가 되었고 일본에서도 2020년경 ‘부모 가치라는 말이 유행되었다.

이 수저 계급론은 부모의 부와 명성이 그대로 자식 대에 대물림 된다는 뜻이다. 이는 점차 증명되고 있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는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의하면 상속과 증여 즉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이 점점 상승해온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는 이 비중이 평균 27%였는데, 2000년대 들어 42%로 상승했다. 이는 개개인의 노동력으로 얻는 소득보다 부모에게 물려받는 재산이 자산 형성에 더 크게 작용된다는 뜻이다.

MZ세대가 생각하는 수저의 구분점은 과연 무엇일까. 특징은 수저 구분이 더욱 세밀해졌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게임 속 캐릭터의 실력처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플래티늄 수저 등이 금수저 위에 존재하고 흙수저 밑에도 쇠수저, 나무수저, 플라스틱 수저, 손수저 그리고 심지어 똥수저도 있다.
극상류층, 즉 다이아몬드나 플래티늄 수저에 해당되려면 자산이 300억 원 이상이여야 한다. 이 수저계급의 특징은 일정 소득이 없다. 즉 노동을 하지 않아도 대를 이어 먹고 살 자산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 상류층인 금수저는 자산 90억 원 이상, 연소득 7억 원 이상이다. 이는 강남에 40평 대 아파트를 보유하고 외제차에 자녀의 고액과외나 스펙 쌓기에 전혀 부담이 없는 존재이다. 다음이 상류층에 속하는 은수저이다. 자산은 약 15억 원 이상, 수입은 1.8억 원이다. 괜찮은 살림살이이지만 강남 아파트의 자가 소유가 아니라는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계급이다. 다음이 동수저이다. 자산 9억 원, 연 수입 8800만 원급이다. 아마도 대치동 전세 살면서 빠듯하게 아이들 과외 수업시키는 우리네 보통의 가정일 것이다.

그 다름이 쇠수저이다. 이는 보통의 가정에서 쇠나 스테인레스 수저를 사용하기에 붙은 계급이다. 자산 6억 원, 연 수입 5000만 원이다. 강북의 작은 아파트 자가 소유나 전세로 살면서 아이들은 고액 과외대신 학원 종합반 수강이 가능한 정도이다. 나무수저도 있다. 자산 3억 원, 연 수입 4000만 원, 흙수저는 자산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1억 원 정도에 연 수입 2500만 원 선이다. 그야말로 요새 사회문제가 되는 빌라 전세살이 계급들이다. 불행하게도 최하도 있다. 바로 손수저이다. 그저 타고 나기를 손 하나 달랑 들고 태어난 이 계급들은 자산은 없고 연 소득이 1500만 원 대. 알바로 한 달을 사는 계급들이다.

물론 이 수저계급론은 개인의 능력으로 수저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해서 미디어에서 가끔 나오는 기사가 있다. 직장인이 월급만으로 서울에서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월급을 꼬박 20여 년을 저축해야 한다는 등의 기사다. 이런 기사는 사실 의미 없다. 월급을 한 푼 안 쓰고 모을 방법도 없고 설사 모았다고 해도 그 시점에 그 가치를 발휘할 지도 의문이다. 이는 어쩌면 희망 고문이다. 해서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상대적 발탁감은 생각보다 크다. 근 몇 년간 3포, 5포 더 나가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라는 자조적인 말이 자주 언급된다. 네포 베이비, 수저계급, 이것이 현상일 뿐이라고 바라고 싶은 것은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타고난 것이 후천적 노력을 완전히 이기는 세상을 아무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글 권이현(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8호(23.2.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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