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마음대로 일터도 못 옮기는' 이주 노동자에 '기본권'보다 '자국 우선' 택한 헌재 [법원 앞 카페]
입력 2023-01-15 09:00  | 수정 2023-01-15 14:13
지난 2020년 당시 폭발한 공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3년 전인 지난 2020년 1월 수도권에 있는 한 가죽 공장에서 '펑' 하는 굉음과 함께 불꽃이 치솟는 일이 벌어집니다. 폭발 사고가 일어난 겁니다. 이 사고로 당시 2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는데 숨진 2명 중 1명은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였습니다. 다친 10명 중에도 4명이 외국인이었죠. 폭발 원인은 보일러 관리 소홀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이날 이 공장에는 사상자들 말고도 다른 이주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네팔 출신 이주 노동자인 A 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죠.


A 씨는 다행히 폭발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이 안전하지 못한 일터라는 생각에 트라우마가 생겼고 일터를 옮기고 싶었습니다.

마음대로 이직할 수 없는 법

그러나 A 씨가 일터를 옮길 수는 없었습니다. 외국인고용법이 정하고 있는 사업장 변경 제한 원칙 때문입니다. 이 법은 사용자가 동의해주거나 아니면 고용노동부가 정한 기준 등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사업장을 옮길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해당 폭발 사고 같은 '중대재해'가 있을 경우도 사업장을 바꿀 수 있게 해주지만 당시에는 임금체불 등 근로조건 위반 같은 사유가 있어야 하는 데 여기에 A 씨는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인고용법

외국인근로자(제12조제1항에 따른 외국인근로자는 제외한다)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직업안정기관의 장에게 다른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의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1.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기간 중 근로계약을 해지하려고 하거나 근로계약이 만료된 후 갱신을 거절하려는 경우

2. 휴업, 폐업, 제19조제1항에 따른 고용허가의 취소, 제20조제1항에 따른 고용의 제한, 제22조의2를 위반한 기숙사의 제공,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 등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하여 사회통념상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이 고시한 경우

3.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

당연히 사업주 동의도 받지 못했습니다. A 씨는 "사업주에게 옮기고 싶다고 말했더니 '절대 안 된다. 여기서 일 못 할 거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뽑을 거다'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그후 해당공장에서 반 년 가량을 더 일했고 해당 공장에서 쓰는 약품이 노출돼 호흡기에 질환이 생긴 뒤에야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인구소멸 맞아 이민 활성화하겠다는데…

최근 우리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 인구 부족,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을 활성화 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민정책 컨트롤타워로 가칭 '이민청' 설립을 언급했고, 지난해 말 나경원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도 저출산 대책으로 이민청 설립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그럼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어떤 외국인들이 오게 될까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사는 등록외국인은 약 118만 명입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는 비숙련 이주 노동자들입니다. 숫자로는 24만 명이고 전체 등록외국인의 21%를 차지하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아는 3D 업종이죠, 농장이나 공장 등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바로 이들 비숙련 이주 노동자입니다. A 씨도 여기에 속합니다. 숫자나 비중으로 볼 때 정부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대부분 이들입니다.

그럼 우리 정부, 또는 입법부나 사법부는 이들 이주 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지난 2021년 12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이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당시 이주노동자 5명은 앞서 언급한 외국인고용법 중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제한한 것과 사업장 변경 횟수를 제한한 게 기본권을 제한한다며 위헌인지를 판단해달라고 헌재에 요청했습니다.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해도 합헌?

헌재의 결론은 어땠을까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합헌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현행 외국인고용법에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헌법재판소 (사진=연합뉴스)

헌재의 합헌 결정문을 보면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현행법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일부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거죠.

물론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에 엄격한 사유를 요구함으로써 제한되는 사익은 결코 작지 않다. 외국인근로자 역시 객관적으로 열악하거나 본인에게 부적합한 근로환경에서 벗어나 사업장을 옮길 필요가 있고, 변경된 사업장에서 더 높은 노동생산성을 발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에 더욱 이바지할 가능성도 있다. - 2021.12.23 헌법재판소 결정문

이런 내용은 헌재에 낸 고용노동부의 의견서에서도 나타납니다.

청구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 사건 법률조항과 고시조항은 청구인들의 신체의 자유, 행복추구권, 근로의 권리 중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를 제한하지 않고, 단지 직장선택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효과만이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 고용노동부가 헌재에 낸 의견서 중

우리 헌법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헌법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이게 침해되고 있는 건 맞다는 거죠. 그런데 왜 합헌일까요?

헌재는 입법목적이 타당하면 합법이라고 하면서 입법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원칙적으로 외국인근로자의 의사에 따른 사업장 변경을 금지하고 예외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함으로써 중소기업 등이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내국인근로자의 고용기회나 근로조건을 교란하는 것을 방지하며,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효율적인 고용관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

그런데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해주면 사업주들의 애로사항이 생긴다고 하고,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다수의 사업장이 외국인근로자 고용 시 애로사항으로 ‘잦은 사업장 변경을 언급하고 있고,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로서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효율적인 관리 차원에서도 필요하며,

"최근 불법체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국인근로자의 효율적인 관리 차원에서도 사업장의 잦은 변경을 억제하고 취업활동 기간 내에서는 장기 근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주 노동자들이 스스로 알고 감수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향후 사업장 변경을 함에 있어서도 사유와 횟수에 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ㆍ감수하고 입국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요약하자면 내국인근로자와의 경쟁을 제한하고, 노동력이 부족한 사업주의 필요에 초점을 맞춘 게 현행법인데 이 법의 입법 취지는 타당하다, 약간의 직업 선택 자유 침해를 감수해도 될 정도로 타당하다는 게 헌재의 판단입니다. 이주노동자의 기본권보다 '자국 이익'을 우선한 판단이죠.

자국 우선 택한 정부와 헌재

앞에서도 조금 소개했지만 취재진은 당시 정부가 헌재에 낸 의견서도 입수했습니다. 하지만, 추가로 내용을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앞서 설명한 헌재의 합헌 판단 내용이 정부 의견서 내용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입니다.

즉, 헌재의 판단과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 이민청을 세워 이민 정책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 이주 노동자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이주노동자의 날'에 모인 이주노동자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고용허가제의 이주 노동자 체류 기간을 현행 4년10개월에서 10년까지 늘려주는 안을 발표할 때도 사업장 변경 제한은 풀지 않았습니다. 당시 노동부 관계자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사업주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다는 취지였습니다.

"눌러사는 건 막겠다"

특히 헌재 결정문이나 정부 의견서에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외국인고용법의 입법 목적 중 이주 노동자의 '정주화' 예방이라는 부분입니다.

사업장 변경을 무분별하게 허용할 경우 외국인근로자를 체계적으로 도입ㆍ관리함으로써 불법체류 또는 정주화를 방지하고, 나아가 원활한 인력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려는 고용허가제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 2021.12.23. 헌법재판소 결정문

시장 수요에 맞는 외국인력을 선발하고 도입(시장수요 존중)한다. 또한 외국인 근로자의 국내 정주화를 방지(단기순환)하고, - 고용노동부가 헌재에 낸 의견서 중

이는 우리나라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주 노동자를 들여오되 눌러사는 건 막겠다는 걸 분명히 한 겁니다. 실제 정부는 비숙련 이주 노동자의 가족 방문비자도 발급해주지 않고 있죠. 가족들이 왔다가 같이 눌러사는 걸 막는다는 취지입니다.

'쓰고 버리겠다는' 이민 정책 괜찮나?

이런 정부나 헌재의 관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습니다. 노동력만 쓰고 버리겠다는 식의 과도한 자국 우선주의가 아니냐는 지적이죠.

앞서 소개한 헌재 결정 당시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하는 게 맞다"며 합헌 결정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을 냈습니다. 이주 노동자 통제를 통한 인력 확보는 결국 사업주의 근로여건 개선을 위한 도덕적 해이를 부르고 장기적으로 산업 현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지적입니다.

일부 업종 또는 중소기업이 외국인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을 벗어나려는 외국인근로자들을 사업장 변경 제한을 통해 저지함으로써 비로소 수익을 달성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면, 이것이 외국인고용법의 목적 가운데 하나인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용자는 특별한 노력 없이 외국인근로자를 현재 사업장에 묶어둘 수 있는 이상 사업장의 작업환경을 개선할 유인이 없으므로, 외국인근로자들의 근로조건과 작업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이로 인하여 내국인근로자의 해당 업종 및 사업장 기피현상이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능력이 없는 부실기업을 존속시킴으로써 산업구조의 건전성과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 2021.12.23. 이석태·김기영 헌법재판관 반대의견 중

전문가들도 '쓰고 버리자는' 건 단편적인 시각이라며 장기적인 사회 통합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헌재의 합헌 결정이 나온 뒤 반대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포천 이주 노동자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달성 목사는 "정부가 사업주 편에사 외국 인력을 보다 많이 들여와서 효과적으로 써먹겠다는 생각만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목사는 또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정책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고 보편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그런 방향으로 제도와 법,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것이 국제노동기구(ILO)의 정신이기도 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문병기 이민정책학회장은 "불법 체류 통제 같은 것은 결국 작은 문제인데 그거에 연연해서는 안 되고 길게 봐야 한다, 생산가능 인구 확대에 그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큰 플랜으로 이주 노동자의 사회통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윤인진 전 이민학회장은 "10년 동안 체류했을 경우 가족들과 결합하고 정주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동력' 넘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지난해 말 4개 여론조사 업체가 공동으로 한 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절반인 50%는 이민 활성화에 동의한다고 밝혀고,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46%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민 활성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자국의 이익에 해가 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만큼 이민 정책의 추진이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인구소멸 시대에 분명히 국경을 넘나드는 노동력 확보는 필요하다는 건 이제 기정사실인 만큼 이제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분명히 고민해야 하는 부분인 것도 사실일 겁니다.

헌재의 합헌 결정이 나온 직후인 지난해 1월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헌법재판소의 합헌 의견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며 "이제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 외국인 근로자의 기본권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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