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약물 지정돼 있지 않아 얼마나 퍼졌는지 예측 어려워
미국 마약 중독자들이 동물 진정제를 마약에 혼합해 오용하는 경우가 급증해 보건 당국이 비상에 걸렸습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명 '트랭크'(tranq), '좀비 약'(zombie drug) 등의 속어로 불리는 해당 마약을 투약할 경우 팔다리 등이 절단될 수 있음에도, 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마약 중 자일라진이 함유된 사례가 90%를 넘었습니다.
1962년 개발된 자일라진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수의사들이 말이나 소의 마취제로 쓰거나 고양이의 구토유발제로 쓰는 등 널리 쓰이는 동물용 의약품입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마약중독자들이 자일라진을 펜타닐 등 기존 마약에 섞어 사용하며 문제가 됐습니다.
이렇게 혼합된 마약을 주사로 투입할 경우 팔다리 등에 '괴사딱지'라고 불리는 부스럼 조직이 생기며 치료하지 않을 경우 팔다리를 절단해야 할 만큼 위험합니다.
또한 해당 마약을 투약하면 여러 시간 동안 정신을 잃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거리에서 팔에 주사를 놓는 마약중독자들/사진=연합뉴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섞었던 펜타닐 등의 효과는 이미 사라져 마약을 더 투약하고 싶은 갈망이 생기게 됩니다.
만약 자일라진을 아편류 마약과 섞어 투약했다면, 마약류 과량투여에 대응하기 위한 보편적 응급치료가 제대로 듣지 않을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필라델피아시 켄싱턴 지역의 마약중독예방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숀 웨스트팔은 NYT에 "필라델피아는 이미 늦었다"며 "전국의 다른 지역이 이를 피할 방법이 있다면, 우리 얘기를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NYT는 지난해 6월 발표된 연구를 인용해 미국 수도 워싱턴 DC, 그리고 50개 주 중 36개에서 유통되는 마약에 자일라진이 검출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욕시에서는 마약 샘플 중 4분의 1에서 자일라진이 나왔으나 보건당국 관계자들은 실제론 이보다 더 널리 퍼졌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해당 약물은 규제약물로 지정돼 있지 않아 동물과 인간에게 사용할 때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NYT는 '트랭크 마약'으로 흔히 불리는 자일라진 혼합 마약을 투약한 경험이 있거나 요즘도 투약하고 있는 중독자 여러 명의 사연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타투 아티스트인 브룩 페더(38)는 '트랭크 마약'을 투약했다가 뼈까지 상처가 번져 1년 전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하루에 여러 차례 팔에 이런 마약을 주사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금단증상을 견딜 수 없다며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NYT는 5개월째 재활치료를 받는 다른 환자의 말을 빌려, 어떤 중독자는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절단한 후에도 절단된 다리의 남은 부분에 '트랭크 마약' 주삿바늘을 찌른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임다원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jfkdnj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