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천장이 녹아내리면서 불똥이 마치 비처럼 쏟아진 터널 속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1시 50분쯤,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 터널을 달리던 트럭에서 발생한 불은 천장을 타고 삽시간에 수백 미터까지 번져나갔습니다.
사망자 5명, 중상자 3명 등 4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사망자 5명은 불이 난 트럭이 있던 차로가 아닌 반대 방향으로 달리던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불이 천장을 타고 반대 차로 쪽까지 빠르게 번졌던 것입니다.
경찰은 이번 방음 터널 화재 수사와 관련해 도로 관리사를 압수수색 하는 등 강제수사에 나섰습니다.
불씨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 건 다름 아닌 방음 터널의 재질인 PMMA,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입니다.
아크릴의 일종인데, 빛의 투과율이 93%로 유리와 비슷해 투명 방음판으로 주로 사용됩니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데다 가볍고 설치도 쉬워 이른바 가성비가 좋습니다.
하지만 화재에 취약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열을 가하면 녹아내리는 성질까지 갖고 있습니다.
PMMA 소재를 방음 터널 자재로 쓰는 게 부적합하다는 결론은 이미 나 있었습니다.
출처 = 2018년 도로교통연구원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 및 방재대책 수립 연구
위 내용은 지난 2018년 도로교통연구원의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 안전 및 방재대책 수립 연구' 보고서의 결론 중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보고서에는 PMMA의 연소 특성상 화재가 발생한 차량뿐만 아니라 인접한 후면의 다른 차량에까지 2차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번 제2경인고속도로 사고가 예견된 인재라는 점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입니다.
출처 = 2018년 도로교통연구원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 및 방재대책 수립 연구
방음 자재로 쓰이는 다른 소재와 기계적, 물리적, 열적 특성을 비교한 내용을 보면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인화점입니다.
PMMA와 성질이 가장 비슷한 열가소성 플라스틱인 PC(폴리카보네이트)가 450도부터 불이 붙는 반면 PMMA는 280도부터 불이 붙습니다.
다른 비교 대상인 PET(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보다도 인화점이 70도나 낮습니다.
PMMA는 화염 전파 속도도 가장 빨랐습니다.
각각의 소재를 0.5m, 1m 높이에서 버너로 점화하니 PMMA는 400초가 지나자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많은 양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녹아내린 PMMA는 꺼지지 않고 2차 화재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화재 실험 후 방음판 상태만 봐도 PMMA는 재료 자체가 녹아내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2018년 도로교통연구원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 및 방재대책 수립 연구
-연간 차량 화재 4,500여 건, 방음벽도 위험
-수차례 위험성 경고에도 현장에서 무시
-수차례 위험성 경고에도 현장에서 무시
지난 3일 새벽 부산의 한 공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인근 동해선 철길로 번졌습니다.
이 불로 선로 옆 방음벽 20여 미터가 불에 탔습니다.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습니다.
같은 날 저녁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선 차량에서 난 불이 갓길 방음벽으로 옮겨붙어 방음벽 16개가 삽시간에 타버렸습니다.
두 곳에 설치된 방음벽은 제2경인고속도로에 설치된 것과 같은 PMMA 소재였습니다.
방음벽에 쓰이는 PMMA의 위험성은 방음 터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확인된 사안입니다.
도로교통연구원이 2012년이 발표한 ‘고속도로 방음자재의 연소 특성 및 방염성능기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PMMA 방음벽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 강조돼 있습니다.
사실상 10년 전부터 제기된 PMMA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현장에선 무시된 셈입니다.
내연기관 차량 화재는 연간 4,500여 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기차에서 발생한 화재는 진화도 힘들어 이번 제2경인고속도로와 같은 화재 참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박상호 기자 hachi@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