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나 찍는 들러리가 되기 싫다"
한낮에도 영하로 떨어진 추운 겨울 날씨 속, 전세사기 때문에 보증금을 잃거나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몰린 피해자 십여 명은 항의피켓과 현수막을 든 채 지난 27일 국토부 앞에 모였습니다.
지난 22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나서 피해자 지원 방안 등을 발표했지만 이후 "한 번도 국토부나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연락 온 것은 없다"며 한 피해자는 "우리는 사진이나 같이 찍는 들러리가 되기 싫다"고 외치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들은 ▲악성경제 사범에 대한 검찰의 처벌강화 ▲악성임대인 주택 임차인에 공지 의무화 법안 마련 ▲주택 매입 사전심의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다음 달 10일에 HUG 전세보증보험 미가입자 및 1차 설명회 미참석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설명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1년 전에 이미 발생…제2, 제3의 빌라왕 곳곳에
'빌라왕' 김 모 씨 사건 전에 이미 위험은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40대 남성 정 모 씨는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240채에 달하는 주택을 갭투자로 샀다가 지난 7월 돌연 사망했습니다.
지난 27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상황 및 요청사항 등을 발표하는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지난 27일 기자회견을 진행한 전세사기 피해자들 중 정 모 씨 사건의 피해자인 A씨는 "단순 사망사건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이상한 면이 너무 많다"며 "임대인이 사망한 작년 7월 30일 직전인 작년 4월부터 7월 말까지 집중적으로 계약이 진행됐고, 사망 이후인 8월에도 집주인 명의의 전자서명도 발견 돼 누군가 설계하고 죽은 임대인은 고용된 '바지사장'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1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는 점입니다. A씨에 따르면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가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중도 사임하기도 했고, 정 모 씨가 사망하다보니 경찰서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처리해 관련 수사도 멈췄기 때문입니다. A씨는 "일부 주민이 억울한 마음에 의심이 드는 건축주도 고소했다가, 무고로 맞고소에 걸리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인은 원인불명·자살…경찰 "사망 관계없이 수사"
임대인의 갑작스런 사망에서 지금까지 나온 사인은 비슷합니다. 먼저 '빌라왕' 사건(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 소유)으로 알려진 40대 남성 김 모 씨(지난 10월 사망)의 사인은 '상세 불명의 질병'으로 인한 병사입니다.
지난 27일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 우편함에 체납고지서가 빼곡하게 보관되어있는 모습. 20대 여성 송 모 씨가 마지막으로 살던 장소 / 사진 = 연합뉴스
최근 사망한(지난 12일) 20대 여성 송 모 씨(인천에서 빌라와 오피스텔 약 60여채 소유)와 1년 전(지난해 7월) 사망한 40대 남성 정 모 씨(빌라와 오피스텔 240채 소유)의 사인은 모두 자살입니다. 경찰은 송 씨의 경우, 불어나는 채무액을 감당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전담수사본부를 꾸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빌라왕' 김 모 씨에 대해 "김 씨 사망과 관계 없이 공범 여부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해 사실관계를 밝혀낼 예정"이라고 지난 26일 밝혔습니다. 자금흐름을 추적하면서 김 씨의 배후나 공모자로 의심되는 관련자 5명을 입건한 것이죠. 사망과 관계없이 수사할 수 있다면 앞서 사망한 정 모 씨도, 최근 사망한 송 모 씨에 대한 수사도 이어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안병욱 기자 obo@mbn.co.kr]
※[세종기자실록] 행정수도 세종시에 있는 행정부처와 관련 산하기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