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서초동에서] "판사는 증거로 감동해"…34년 경력 법관이 본 '여론전' 세태
입력 2022-12-03 09:00  | 수정 2022-12-03 15:28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민사부 부장판사 (직접 촬영한 사진을 기자에게 보내줬다.)
'밤샘 조사' '포토라인' 줄곧 폐지 목소리…"오해도 받았지만 결국 내가 맞았다"
'피케팅', '탐사보도' 동원할 노력으로 증거 확보해라…"소용없는 데 힘 빼니 안타까워"
인터뷰 약속을 잡고 서울고등법원 민사부 강민구 부장판사의 사무실에 방문한 날.

강 부장판사의 PC 옆 프린터기에선 강 부장판사가 당연직 회장으로 있는 법원 내부 언론법 연구회 회원과 공동학술대회 주최측 일원인 한국언론법학회 회원들에게 나눠줄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 비책" 사용법을 적은 노트가 한창 출력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법정보화와 IT 활용 팁을 법원에 전파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그는 'IT 판사'라는 별명은 아쉬워했습니다.

법원 내부 판결문 검색엔진에서 강 부장판사의 이름으로 나오는 판결문은 총 1만 3백 여 건, "재판도 남들만큼 열심히 했다"는 그입니다.

어느 때보다 법원 바깥의 목소리가 큰 시점, 34년 경력의 법관에게 시민 입장에서는 승소의 비책을, 출입기자 입장에서는 법원의 미래를 물었습니다.



Q. 전자책을 5권, 4,400페이지 쓰셨다. 본인의 코트넷 글만 뽑은 책도 1,000페이지인데, 집필을 시작한 시점은?
= 제가 88년도에 판사가 됐으니까 88년부터 2021년까지 자료인데, 초창기 디지털 자료는 저도 많이 분실해서 대체적으로 저기 있는 자료들은 90년대 중반부터 데이터가 남아 있고, 코트넷이 오픈된 게 2,000년이에요. 2000부터 2021년까지니까 22년간 지방 부장 때나 고등부장 때나 쉼 없이 저렇게 올렸는데 극히 일부만 뽑은 게 천 페이지가 넘었어요.

Q. 검찰 앞 포토라인(지금은 없어졌다) 폐지 목소리를 계속 냈다고.
= 밤샘 수사 없애는 거 포토라인 없애는 거. 그 운동을 제가 했어요. 내가 코트넷 게시판에서 반대하는 사람들한테 욕도 얻어먹었지. 결국은 제 말이 맞는 걸로 돼서 지금 다 없어졌잖아요. 고등학교 후배 임종헌 차장 돕기 위해서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오해도 받았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Q. 판결문 전면 공개 주장도 했다고? 기자 입장에서 너무 반가운 얘긴데.

= 30여 년 전부터 제가 판결문 공개 전면 공개를 주장한 사람이거든요. 97년, 98년도에 대법원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을 하면서 대법원 선고 판례를 정리ㆍ편찬ㆍ공개하는 업무를 맡았었어요. 그때 그 생각이 절실했어요. 모든 판결을 실시간으로 공개를 해야지만 판사들도 노력도 하고 비판도 받아가면서 바깥의 변호사 실력도 공개가 된다. 판사만 견제되는 게 아니고 변호사도 어느 변호사가 실력이 있는지 국민한테 공개가 되는 거니까요 승소, 패소가 다 나오잖아요.

재판 결과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한 법원 공격, 최근엔 영장 (미)발부에 대한 정치권의 여론전까지 불붙은 상황이죠. 어떤 법원 관계자는 기자에게 "법원은 각 재판부가 독립되어있다보니 판사에 대한 신상털기나 비난을 보호해주거나 감싸줄 '조직'같은 게 없다. 위협을 혼자 견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고등법원에서도 '고참'이 된 강 부장판사는 어떤 답을 내놓을지궁금했습니다.


Q. 어느때보다 판결에 대한 성토가 많은 최근이다. 일련의 사태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드는지.
= 특정한 정치적인 사건 그거는 전체 사건 건수의 0.001%거든요. 뉴스에 나온 그것의 결론을 가지고 다른 사건도 다 그렇게 재판한다고 오해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대다수의 민사ㆍ형사 사건은 뉴스에 안 나오고 99.9%는 법 이론대로 이른바 국민이 생각해도 수긍되는 그런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는데, 뉴스로 다루어지는 사건만이 이상하게 또 커먼센스에 위반되는 판결도 가끔 있고. 물론 0.01퍼센트 사건 하나라도 바르게 나는 그날이 오면 가장 좋겠지만은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하나 비유적으로 하자면, 세상의 어떤 조직이라도 종 모양의 정규 분포하는 게 있어요. 인적자원의 우수성 같은 그런 거, 중간 그룹이 70%~80% 있으면 엑셀런트한 상위 그룹이 또 10% 있고 하위 그룹이 10% 있듯이 정규 분포를 그린다고 생각하면은 이해가 되는데, 국민은 그 정규 분포를 용서를 못하고, 판사는 무조건 절대적으로 옳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상급심서 잘못 선고된 하급심 판결을 거의 다 바로 잡아주는 것이 3심제이고, 대개는 바로 잡아지고 있지요.
3심까지 가도 패소 당사자는 자기만의 기준에서 승복 못하지만, 그것이 재판 제도의 한계이기도 하기에 재심사유가 없는 한, 승복해야 하고, 무작정 불복한다면 법원ㆍ재판 제도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지요. 특히, 가장 큰 오해가 민사 사건의 '변론주의' 라는 건데 법관은 사건 당사자 본인ㆍ대리인이 주장하고 입증하는 범위 안에서 판단해야 되거든요. 국민은 무조건 판사가 이길 사람 이기게 해주고, 질 사람 지게 해주고, 형무소 가야 될 사람 판사가 알아서 가게 하고, 그 역할을 판사가 알아서 다 해달라는 거예요. 이른바 '포천청 재판', '원님 재판' 요구인데, 사실은 원님 재판 포청천 재판도 증거재판주의이고 그렇게 함부로 한 게 아니었어요. 입증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판사가 길이나 답을 알아도 코치할 수가 없지요. 지금 개최중인 월드컵 경기의 심판이 실력있는 팀을 무조건 이기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고 있는 모습이 바로 법관의 역할이라고 이해하면 쉽지요.

Q.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 중에 '탐사보도'를 동원해도 소용이 없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 한 무리 시위하고 이렇게 해봤자 소용이 없다. 왜냐면 재판절차 내부에서 서류나 증거로 제출된 거를 보고 판단하는 건데 그 밖에서 아무리 이게 옳다 이렇게 얘기를 해도 판사가 들어줄 수가 없잖아요. 근데 거기에 힘 빼는 것 같아서 좀 안타깝더라고요. 법적 프로세스 안에서 그 노력을 집중하는 게 낫지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하는 일부의 탐사보도를 동원해도 효과가 없어요. 너무 안타까운 겁니다.

Q. 마지막은 분위기를 전환해서 가벼운 이야기로... 사진 찍는 것을 즐긴다고 썼는데 후배 판사들도 찍어주시나.
= 저 카메라를 사서 항상 우리 방에 오는 사람들 여기서 사진을 제가 많이 찍어주고 있죠. 이거(맨 위 사진의 강 판사 왼쪽 '적선지가 필유여경' 서각이 걸려있었다.)는 제 초등학교 죽마고우 친구 작가의 작품. (참 예쁘네요) 그냥 뭐 풍경도 찍고 뭐 요새는 단풍도 찍고 꽃도 찍고 고등학교 때 사진반을 했어요. 필름 사진반,고등학교 때 그 추억으로 이제 DSLR 최신 모델 직전 것인데 저것도 좋은 거죠. 3천300만 화소니. 렌즈도 다 구비해서 저걸로 많이 찍곤 했지요. 취미생활로 사진을 좀 많이 찍습니다. 그래서 저 책들에 나오는 사진은 표지에 나오는 사진들이 있잖아요. 다 제가 찍은 거예요.

강 부장판사가 배포한 '무료' 도서들, 표지 사진은 모두 그가 촬영했다.


2년이 남지 않은 법관 임기, 그는 법관 은퇴 이후에는 법조인의 삶을 살더라도 디지털 격차를 부수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했습니다.

노년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보화 교실을 열며 삶을 보내겠다는 각오를 그의 블로그 이름 '디지털 상록수'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박은채 기자 icecream@mbn.co.kr]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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