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재난에 드리운 '지역 이기주의'
입력 2022-12-01 01:46  | 수정 2022-12-01 03:42
재해구호의 몰이해 혹은 이기주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가 있습니다.

영화는 영리하다는 원숭이에게 아침에는 3개 저녁에는 4개의 도토리를 주었더니 너무 적게 준다고 항의를 해, 이번에는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의 도토리를 주었더니 만족해하더라는 고사 조삼모사(朝三暮四)와 유사한 맥락으로 스토리를 꾸려갑니다.

포항의 일부 정치인들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자연재난 피해민들을 위해 모금한 의연금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라'며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대국민 성금 가운데 수해 의연금의 배분과 관련, 재해구호법을 없애고 '지정 기부'하자는 주장인데 '자신들 지역에 기반을 두는 기업에서 어쩌다 낸 의연금은 전부 자신들의 피해 지역과 주민들에게만 돌아가 쓰이도록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지역 기업에서 기부한 의연금은 얼마가 되든, 다른 지역 피해 주민들에게 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재해구호법'의 몰이해 탓이 큽니다.

한해 3조 예산 운용하는 포항이 100억 원 기부금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해가 집중되어 포항보다 훨씬 피해가 심한 지자체장 중 구호법의 취지를 아는 이라면 누구도 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이재민들이 국민 성금 즉, 의연금이 아닌 '위로금'이 "많다, 적다" "우리 지역만 더 달라" 이런 말에 상처받기 때문일 겁니다.

행안부가 발표한 피해 복구계획에 따르면 8월 집중호우와 9월 태풍 힌남로로 발생한 주택피해(전파/반파/침수)만 해도 27,262세대와 5,105세대에 이르고 있다. 사망자도 각각 20명, 11명이 발생했습니다.

이렇게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재해구호법은 ‘동일 형태의 자연 재난을 겪은 피해자들에게는 편중, 중복, 누락 없이 균등하게 지원하고자 피해 사례별(인명피해/재산피해/주생계수단 피해)로 국민 성금 지원액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에는 포항지역을 거점으로 2차전지 양극재 소재를 생산하는 기업 ‘에코프로가 기부한 의연금 100억 원이 있는데 지역 정치인이 100억 원 중 45억 원만이 포항시민에게 지원되었다”고 주장했고, 일부 언론이 이에 근거하여 재해구호법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역 기업이 기부한 의연금이 오롯이 해당 지역만을 위해 쓰이길 기대할 수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재난 전문가들은 재해구호법이 지역 이기주의에 물들지 않아야 할 ‘명제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협회 홈페이지의 2012~2021년 10년간의 통계가 이를 증명하는데 1,034억 원의 의연금 중 무려 42.83%에 이르는 443억 원 가량이 경북지역에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경북 지역은 그동안 구호법의 최대 수혜자였던 것입니다.

통상 의연금의 70%가량은 수도권에서 모금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경북지역은 그동안 의연금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지역입니다. 포항 지역의 정치인들이 '우리 기업 기부금은 우리 지역에 주장은 지역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정치인들 때문에라도 재해구호법은 더 지켜져야 합니다. 이는 피해를 본 모든 지역의 수해 이재민을 호도하여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오랜 기간 재난과 배분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의 따끔한 비판입니다.

또한 '45억 원만 지급했다'는 논란에서 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협회 배분 관계자는 실제 의연금을 받을 사람의 실명 계좌 등 확인할 것이 많아서 포항 공무원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재민들께서 공무원들을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며 오히려 정부 피해 집계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빨리 돈을 안 준다”라고 하기 전에 또, 피해 집계를 부풀려 1만 5천 세대 정도로 파악하다가 반 이하로 줄어들자 협회에 포항으로만 돈을 낸 것이 얼마냐?”며 연일 질문을 하기 전에 정확한 피해규모와 이재민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을 겁니다.



정부가 재해구호법을 제정한 이유는 동일 형태의 자연 재난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편중·중복·누락 없이 균등하게 지원하고자 함입니다.

법을 제정한 것은 공정·균등의 원칙에 따라 정부 곧 행안부가 제정한 것이며 비판하려면 그 비판의 주체인 정부나 행안부가 되어야지 법에 따라 이를 집행하는 협회를 비난해서는 안 될 일일 겁니다.

구호 활동에 전념했던 한 직원은 "식사와 간식, 집수리, 의료지원 등 최선을 다했고 평소 비축해둔 물품도 의연금과 무관하게 24억 원 이상을 기업들의 도움으로 수도권에서 지원했다. 이런 물품들은 시가 도운 것이 아니고, 전국의 기업과 유명연예인들이 큰 힘이 되어주셨다"며 "엉뚱한 논란이 이재민들 상처가 더할까 오히려 걱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상주기자 [mbn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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