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기자의 문화이야기] 안드라스 쉬프, K-클래식 아티스트 지도…"주요 리듬, 소리내 노래 불러라"
입력 2022-11-08 17:45  | 수정 2022-11-09 10:46
신창용 피아니스트를 바라보는 안드라스 쉬프 [사진=기자 촬영]
신창용·이주언·문지영 피아니스트, '마스터클래스' 참여
음악전공자뿐 아니라 일반 관객도 청강 가능하도록 해
'바흐 해석의 권위자'로 불리는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68세)가 한국의 피아니스트들을 상대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습니다.

안드라스 쉬프는 오늘(8일) 신영체임버홀에서 피아니스트 신창용(뉴잉글랜드 음악원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과 이주언(어정초 5학년), 그리고 문지영(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의 연주를 듣고 조언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안드라스 쉬프는 '빌딩 브릿지' 시리즈를 통해 젊은 연주자들에게 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마스터클래스도 열고 있는데, 현재 K-클래식의 대표 주자인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조성진도 각각 2008년과 2011년에 쉬프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쉬프는 앞서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에서 금메달을(2012년), 독일연방공화국에서 대십자 공로훈장을(2012년), 로열필하모닉협회에서 금메달을(2013년) 받고,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2014년), 왕립음악원으로부터 명예박사를(2018년) 받은 바 있는 명연주자.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누구나 청강이 가능하도록 공개 형식으로 진행되어, 객석이 가득차있는 상태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긴 여행을 하려면 색깔이 단조롭지 않아야"

안드라스 쉬프의 조언을 듣는 피아니스트 신창용 [사진=기자 촬영]

무대에 오른 첫 번째 주자는 2018 지나 바카우어 국제 콩쿨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신창용입니다.

슈만의 유모레스크(Op.20) 연주를 들은 쉬프는 "이 곡이 어땠냐"고 질문했고, 신창용은 "긴 여행 같았다"며 "예전에 공부한 것을 다시 보고 1년 정도 됐다"고 답했습니다.

그런 신창용에게 쉬프는 "긴 여행을 하려면 색깔이 단조롭지 않아야 한다"며 정중하게 연주하기보다 종이에 써있는 것 이상으로 유머러스한 면을 꺼내달라고 주문했고, 이후 신창용의 연주는 훨씬 더 강약이 잘 표현된 것으로 변모했습니다.

특히 쉬프는 숨은 왼손의 전반적인 리듬도 드러날 수 있도록 해, 왼손의 캐릭터와 유머가 나타나게 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같은 음이 반복된다면 다른 색도 보여주려고 해야 한다고 충고하고는 "악보만 보고 치는 것보다 흥미롭게 하려면 이방인이 뛰어들게 된다면 어떤 색이 될지 상상해보라"며 "비자(visa)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냈습니다.

속도가 점차 빨라진다 싶으면 "숨 쉬어라"라고 말하고 적당한 속도감의 트릴을 주문했고, 격정적인 것을 표현하더라도 급하게 빠르고 강하게 치는 것이 아니라 주요한 소리는 들리게 여유가 있어야 한다며 박자를 맞출 수 있도록 옆에서 주요 선율을 노래로 불러줬습니다.

아울러 "모든 음표가 들리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방향성이 있어야 하고 16분음표가 말하듯이 들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쉬프는 부분 부분마다 행진하는 느낌, 음침하고 위험한 느낌, 어린 아이들을 겁줄 때 '말 안 들으면 누가 와서 잡아간다'고 말할 때의 느낌, 또는 반복되는 음은 종소리이고 16분음표는 파도라는 느낌 등을 상상할 것을 구체적으로 주문했습니다.

"노래로도 부를 수 있어야"

안드라스 쉬프의 조언을 듣는 피아니스트 이주언 [사진=기자 촬영]

다음 주자는 올해 헨레 피아노 콩쿨 전체대상을 탄 어린 피아니스트 이주언.

쇼팽의 마주르카풍 론도(Op. 5) 연주를 듣고 다가온 쉬프는 꾸밈음을 칠 때에도 멜로디라인이 들려야 한다며 운지법을 고칠 것을 조언했습니다.

좋은 운지법이 있다면 피아노를 치기 훨씬 쉽고 엄지 등 손가락의 움직임은 팔목 역시 도와줄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며 쉬프가 "운지법을 더 배워오는 것을 숙제로 제가 내주겠다"라고 부드럽게 말하자, 청중들은 함께 미소를 지었습니다.

특히 신창용 피아니스트 때와 마찬가지로, 쉬프는 음악에서 화성(harmony)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들리면 안 된다며, "혼자 연습할 때는 성악가가 아니더라도 노래를 부르며 연습하면 좋겠다"고 언급하고 "그래야 어떤 음이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왼손만 따로 연주해보는 식으로 왼손과 오른손의 구조적인 연결을 느껴볼 것을 권유했고, 윗음부터 아래음까지 연달아 내려가는 구간에서도 파도처럼 느끼면서도 페달은 현악기로 비브라토(현을 손가락으로 눌러 진동을 만드는)하듯이 예민하게 잘 바꿀 것을 주문했습니다.

구체적인 구간별로는, 쉬프는 마주르카가 어떤 박자인지 아냐고 질문하고, 이주언이 "3/4박자(폴란드 민속 춤곡의 박자)"라고 답하자 "첫 번째 소리가 아닌 두 번째 소리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이주언이 바로 적용해 피아노를 치자 크게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비바체(vivace, 악보에서 아주 빠르게 연주하라는 뜻)에 대해선 "빠르게라기보다는 활기차게"라고 설명하며 "멜로디가 기교로 느껴지지 않도록 하고 너무 빨리 치려 하기보다 음악가 자신의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치면 좋겠다"고 조언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연주…앵콜곡으로도 좋을 듯"

안드라스 쉬프의 조언을 듣는 피아니스트 문지영 [사진=기자 촬영]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아티스트는 2015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쿨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Op.13) 연주를 끝마친 문지영을 마주한 쉬프는 곡을 선택한 이유부터 물어봤습니다.

문지영이 "유작 변주곡이라 불리는 5개 중에 2개를 빼고, 제가 가장 연결된다고 느꼈던 변주곡 3개를 포함해 연주했다"며 "이 변주곡은 4년 전에 처음 배웠다"고 말하자, 쉬프는 "완벽하고 사실은 아주 좋다"며 "마지막 변주곡은 특히 매우 아름다웠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정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유작 변주곡은 몇 곡을 뽑아 앵콜곡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쉬프는 좀더 추상적인 조언을 이어갔는데, 이를테면 오케스트라의 금관과 같은 소리를 추가해달라는 주문이 있었고 문지영은 그대로 더 웅장한 피아노 소리로 화답하며 쉬프의 칭찬을 이끌어냈습니다.

쉬프는 이어 "멘델스존의 관현악곡 '한여름밤의 꿈'을 떠올려보고 강물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연주하자"는 등의 조언을 하는가 하면, 문지영의 연주를 듣고는 "다른 이들은 강하게만 치려고 하는데 매우 잘 쳤고 베토벤 교향곡 7번이 떠오른다"고 높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쉬프는 문지영에게 페달을 좀더 예민하게 떼보면 어떻냐고 주문해본 뒤 "브라보"를 외쳤고, 팔의 움직임 등을 갖고 연주하면 소리도 더 좋고 보기에도 더 좋을 수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일반 청중도 감탄…"이런 기회 많았으면"

마스터클래스가 끝나갈 무렵 기자를 만난 한 일반 청중은 "저는 음악 전공생도 아니고, 인터파크에서 관람표를 팔길래 보러 오게 됐다"며 "클래식 초보인데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 자리였고, 이런 기회가 우리 음악을 위해 앞으로도 많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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