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고시급 포함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급락하면서 인재확보에 비상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에 비해 권한은 줄었는데 보수와 근무여건마저 사기업에 미치지 못해 매력이 현저히 적어졌기 때문이다. 신입 공무원중 도쿄대 졸업생 비율은 급감했고 간부들은 출신 고등학교까지 찾아가 홍보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공무원 인기 하락세가 계속 되면서 올해 국가공무원 종합직(한국 행정고시 해당)에 합격한 도쿄대 졸업생 수가 21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2015년 45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과거 농림수산성 처럼 도쿄대 졸업생이 1명도 지원하지 않은 부처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과거 일본 경제 발전의 산실이자 최고 엘리트 조직으로 꼽혔던 재무성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모교를 방문해 재무성 업무에 대한 홍보 강연을 하도록 하는 일도 잦아졌다.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 대학뿐 아니라 출신 고등학교에 까지 간부급 직원이 동원되는 일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무성 내부에서는 "이렇게 까지 해야되나" 라는 탄식이 나오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에서 공무원 인기가 급락한 이유는 '총리 관저' 주도로 정책이 결정되면서 관료들이 정책에 미치는 권한이 줄어든데다 보수 등 근로여건도 사기업에 비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자부심을 느낄만한 요소는 줄었는데 일은 많고 보수와 복지는 열악해 소위 '블랙 기업'의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인사원(한국 인사혁신처 해당)은 내년도 종합직시험을 2주일 가량, 내후년에는 그보다 2주일 가량 더 앞당겨 실시하기로 했다. 지원자들이 사기업 입사가 정해지면 전형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사기업 일정과 채용일정을 맞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일본에서는 과거 '관존민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가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좋아 사기업에 인재를 빼앗긴다는 우려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일본 당국은 이미 여러 조치를 내놨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당시 잔업시간 상한을 폐지해 후생성 근무 30대 직원의 경우 지난해 기준 연봉이 900만엔으로 약 30% 늘어났다. 경제산업성은 퇴사 예방을 위해 업무는 물론 육아문제 등 업무 외적인 사안에 대해서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고충상담을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민간으로 빠지는 인재들을 붙잡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인사원에 따르면 환율을 반영한 동일 직급의 공무원 급여는 일본이 미국의 절반, 영국의 80% 정도다. 엔저 심화 이전의 환율로 비교해도 적은 편이다. 일본 국회법은 공무원의 급여수준을 국회의원이 받는 세비 이하로 한정하고 있어 차관급 연봉인 2300만엔 가량이 상한선이다. 닛케이는 민간분야의 변화 속도 이상으로 변하지 않으면 일본에서 공무원 인기 하락세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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