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풍력발전기 15대 중 13대 사실상 '방치'…탄소 없는 섬 앞둔 '제주의 딜레마'
입력 2022-10-26 22:19  | 수정 2022-10-27 16:25
지난 15일, 충분한 바람에도 가동을 멈춘 제주 동복·북촌 풍력개발단지 발전기. <촬영 : 심가현 기자>

지난 15일 제주시 구좌읍 동복·북촌 풍력개발단지의 모습입니다.

이곳에 설치돼 전력 생산이 가능한 바람개비 모양의 풍력발전기는 모두 15대, 하지만 기자가 방문한 날, 이 중 13대는 운행을 멈추고 쉬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충분히 강하지 않아서일까. 이날 제주 지역에 분 바람은 약 초속 6m로 발전기 가동 기준인 초당 3.5m를 한참 넘어섰습니다.

강상현 제주에너지공사 발전설비 운영총괄팀장은 "아침에 전력거래소로부터 '출력 제한'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재생에너지량이 많아도 문제?…'과부하·정전 우려'

제주는 오는 2030년까지 도내 화석 연료 사용 '0'을 목표로 하는 '탄소 없는 섬'(Carbon Free Island) CFI 2030'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정책 마무리를 8년 앞둔 현재 제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전체 에너지의 18.3%로 전국 1위로 올라섰지만 '출력 제한' 이슈가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출력 제한'은 전력 생산량이 수요를 넘어설 때 시행하는 셧다운 제도입니다.

전기가 필요량보다 초과 생산됐을 때 이를 망에 다시 그대로 흘려보내면 과부하나 정전 사태 등의 사고 우려가 커져 한국전력이 강제로 '발전을 중단하라'고 조치하는 겁니다.

멀쩡한 발전기를 쓰지 못하게 막을 게 아니라 과잉 생산량을 다른 데에 활용하거나 화력발전 등 다른 에너지원 생산량을 줄이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재생에너지의 특성상 날씨 등 주변 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해 무작정 비중을 늘리기도 난감한 데다, 제주에서 생산된 전기를 육지로 보내는 '역송전'도 현 전력망의 안정성을 고려할 때 아직 불가능합니다.

현재 전국에서 출력 제한이 발생하는 곳은 제주뿐. 제주가 2015년부터 작년까지 받은 출력 제한 조치만 총 225회에 달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전은 공공기관인 제주에너지공사의 풍력발전기에 대해서만 출력 제한을 해왔지만, 올해 민간 태양광 발전 시설까지로 제한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2034년엔 전체 발전기 40%가 쉬는 셈…"보상 근거와 대책 마련해야"


'출력 제한'의 피해는 고스란히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발전 규모에 따라 기대되는 수익에 맞게 투자를 했는데, 출력 제한이 잦아지면서 놀리는 발전기가 많아지다 보니 손실도 커지는 겁니다.

정부가 안정적인 운영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인허가를 남발하고는 막상 가동을 중단하며 민간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정부는 아직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력 제한 시 지역화폐 개념의 '토큰'으로 보상하자는 연구용역 결과도 나왔지만 아직 제언 수준에, 한국전력은 최근 내부 검토에서 제주 등의 출력 제한 손실에 대해 '무보상'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최근 출력 제어 문제 해결을 위해선 남는 전기를 거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관련 법 제정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오는 2034년 제주 태양광·풍력 발전의 출력 제한 조치는 연간 326회, 제어량은 시간당 293만 1천㎿로 전체 발전량의 40%가량에 달할 것이라는 것이 제주에너지공사의 계산입니다. 예상 손실액도 5천100억 원대에 이릅니다.

여기에 정부는 작년 기준 6.6%인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까지 21.5%로 늘리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출력 제한 문제가 제주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주가 육지보다 먼저 마주한 성장통을 계기로, 과잉 생산된 신재생에너지 처리를 위한 심도 있는 논의와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