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역대급 엔저에 日 향하는 개미…로봇·반도체 '뭉칫돈' [월가월부]
입력 2022-10-25 17:44  | 수정 2022-10-25 19:30
◆ 서학개미 투자 길잡이 ◆
일본 주식 투자에 나서는 개미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올 들어 엔화 가치가 30% 이상 급락한 데다 닛케이지수가 상대적으로 선방하면서 일본 투자의 매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25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매수 건수는 5911건을 기록했다. 매수 건수는 1년 전(3816건)과 비교하면 1.5배 증가했다. 월간 기록으로는 통계자료가 있는 2011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이 기간 매수금액은 9678만 달러(약 1386억원)로 집계됐다. 지난 4월 일본 주식 매수 건수가 처음으로 5000건을 돌파했는데 이후 9월까지 월평균 5343건을 이어가고 있다.
올 4월부터 일본으로 향하는 투자자가 늘어난 것은 무엇보다 환율 효과다. 현재 엔화값은 달러당 150엔마저 위협하며 32년래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국내 투자자에게 더 호재인 점은 달러당 엔화값이 달러당 원화값보다 가파르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100엔당 원화값이 3월 말 1000원 수준이던 것이 현재는 96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25일에는 100엔당 962.49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6월에는 934원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한국 투자자에게는 더 적은 돈(원화)으로 투자가 가능해진 셈이다.
구체적으로 국내 투자자들은 일본 반도체, 로봇 관련 기업 주식을 사들였다.

국내 투자자들은 로봇 등 유망한 분야의 일본 주식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국내 투자자 매수 상위 일본 기업은 반도체 부품 기업인 롬, 글로벌 산업용 로봇 기업인 화낙, 공장 자동화 전문 기업인 키엔스 등이었다. 롬 주가는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면서 올해 들어서만 59% 하락했는데 저가 매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로봇 섹터가 관심을 끈 것도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일본 기업(화낙, 키엔스 등) 주식에 매수가 몰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기업도 올 들어 주가가 크게 하락해 화낙 주가는 18%, 키엔스는 31% 떨어졌다. 이 밖에 국내 투자자들은 게임 기업 닌텐도와 비즈니스호텔 운영업체인 교리츠 메인터넌스 주식도 사들였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본 증시에는 로봇 등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기업이 다수 상장돼 있고 2025년까지 큰 선거가 없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순매수 상위에 일본 주요 리츠인 닛폰 빌딩 투자법인이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끌었다.
국내 투자자의 식성은 일본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 기간 국내 투자자들은 일본에 상장한 미국 상장지수펀드(ETF)도 대거 매수했다.
최근 한 달간 순매수 1위인 닛코 리스티드 인덱스 미국 주식 나스닥100(Nikko Listed Index Fund US Equity(NASDAQ 100) Currency Hedge ETF), 3위인 아이셰어스 미국채 20년물(Ishares 20+ Year US Treasury Bond JPY Hedged ETF), 4위인 아이셰어스 S&P500(Ishares S&P 500 JPY Hedged ETF) 상품은 미국 투자 ETF다. 또 환헤지(환율고정)를 했다. 달러당 엔화값 변동에 따른 수익률 변화 없이 오로지 기초지수 수익률만 추종하는 것이다.
한국 투자자가 굳이 일본 증시에 상장된 미국 ETF에 투자한 이유는 환율인 것으로 풀이된다. '킹달러' 시대에 상대적으로 더 하락한 엔화로 투자하면 원화에 비해 더 적은 금액으로 투자가 가능하다. 그만큼 수익률은 높아지는 셈이다. 여기에 원→엔은 노출, 엔→달러는 헤지함으로써 엔화 강세에 따른 환차익을 얻으면서 달러 손실은 방어할 수 있다. 엔화가 강해질 것이라는 판단 아래 미국 자산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김형우 미래에셋자산운용 글로벌ETF마케팅본부장은 "일본 주식은 가격별로 10주, 50주, 100주씩만 살 수 있다 보니 1주 또는 10주씩 살 수 있는 ETF로 사는 경향이 있다"며 "이 상품들에 대한 수요는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시장의 저평가, 달러의 고평가 판단 아래 나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상품이 복잡한 만큼 리스크도 잘 따져봐야 한다. 우선은 수수료다. 원→엔→달러로 두 번 환전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환전 수수료가 비싸진다. 달러 헤지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도 고려해야 한다. 이들의 연간 총보수는 0.1~0.2%로 미국 대표 ETF인 SPY(SPDR S&P 500 ETF Trust, 총보수 0.09%)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다. 엔화를 보유하고 있다면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엔화 약세가 지속돼 달러당 160엔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로·파운드화와 같이 엔화 초약세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의 통화정책 차별화, 일본 경제의 취약한 펀더멘털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최근 엔화를 매입하는 등 외환시장에 개입한 바 있으나 '반짝 효과'에 그쳤다. 시장에서는 엔저의 근본 원인인 미국과 일본 간 금리 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엔화 약세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일본 ETF는 거래량이 전반적으로 낮기 때문에 등 유동성을 확인해야 한다. 닛케이255와 같은 지수형 상품으로 투자하는 게 적합하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 월가 투자정보는 유튜브 '월가월부'에서 확인하세요. 자세한 해외 증시와 기업 분석 정보를 매일경제 해외 특파원들이 생생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