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21일 밤 외환시장에 비공개 개입하며 달러 엔화 값이 7엔이나 올랐다. 이번 주 들어서도 엔화 값 하락을 막기 위한 시장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외환시장 개입은 '반짝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금리 차이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통화당국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등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의 추세와는 반대로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하고 있다. 지금도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는 3%포인트나 된다. 연준이 11월과 12일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씩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밟는다면 금리 차가 4%포인트 이상 벌어진다. 미국이 경기 침체를 우려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 금리 인상 속도를 줄인다고 해도 엔화 약세 추세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일본 내에서 자금이 유출되는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일본이 기존 저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미국·유럽과 보조를 맞춰 금리를 올리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엔화 값 하락을 막을 수 없다.
문제는 엔화 값 방어를 위해 일본 통화당국이 섣불리 금리를 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정부 부채가 금리 인상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63%가 넘는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국채 잔액은 1000조엔(약 9550조원)을 돌파했다. 금리를 1%포인트만 올려도 이자 부담이 연간 10조엔 가량 늘어난다고 한다. 엔화 값이 급속히 떨어지는데도 일본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제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상승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일본의 무역적자가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악을 기록한 것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2022회계연도 상반기 무역수지는 11조75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했던 1979년 이후 최대 규모다. 총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9% 이상 증가했으나 총 수입액이 44.5%나 늘었다. 환율과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입이 급증한 원인이다. 엔화 값이 떨어지면 일본의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커질 수 있지만 주요 기업의 해외 법인이 늘어나면서 그 효과는 반감됐다. 무역적자가 이어지면서 일본은 올해 연간 기준으로 42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일본도 고물가로 서민들이 아우성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에 비해 물가가 경제에 주는 부담이 크지 않은 것으로 일본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엔화 값 급락으로 인한 충격을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지속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외환보유액이 1조3000억 달러에 달한다. 시장 개입 여력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시장 개입으로 하락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추세 자체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걱정스러운 점은 엔화 값 하락세가 장기화하면 한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처럼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아시아 시장 전체에서 자금이 이탈하면 제2의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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