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좋아요. 그런데 욕은 저희가 듣잖아요?"
경기도 성남의 한 먹자골목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50대 점주 A씨. 오는 11월부터 편의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와 나무젓가락 사용이 제한되는 것에 대해 그는 "취지에는 정말 공감한다"면서도 이같이 말했다.
A씨는 "저희 매장만 하더라도 나오는 쓰레기의 양이 상당하다. 특히 일회용품 비중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며 "문제는 그런 제도를 일괄 적용하면 손님들 불만은 늘 점주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메뉴가 친환경 여부 결정하나" 비판
24일 환경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내달 24일부터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시행한다. 이는 편의점과 제과점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고, 나무젓가락 사용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규제다.
이번 규칙은 지난 2019년부터 대형마트 등에 적용돼 시행 중인 비닐봉지 사용 금지 조치가 확대되는 것이다. 규칙이 시행된 뒤로는 편의점에서 종이봉투, 다회용 봉투는 판매할 수 있지만, 일회용 비닐봉지 판매는 최대 300만원 과태료 대상이다.
정부가 규제 도입을 예고함에 따라 편의점 업계도 선제적으로 대비에 나섰다. 업계 1위를 다투는 GS25와 CU는 각각 지난달과 이달 비닐봉지 발주를 중단했다.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도 지난달부터 발주를 줄이고 있다.
나무젓가락 역시 규제 대상이다. 기존에는 편의점에서 즉석식품이나 조리식품을 취식할 때 나무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내달부터는 컵라면과 도시락을 먹을 때만 가능해진다. 간편식 메뉴에 따라 나무젓가락 허용 여부가 갈리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일선 점주들 사이에서는 나무젓가락을 요구하는 소비자에게는 컵라면 구매를 장려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온다. 한 40대 편의점 점주는 "냉동만두 먹을 때 사용한 젓가락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라면 먹을 때 사용한 건 친환경이냐"라며 실소를 터뜨렸다.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 관련 규제 도입을 예고하자 일선 편의점주들 사이에서는 반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지금도 진상 많은데" 점주들 우려↑
편의점 점주와 직원들 사이에서는 당국의 규제 도입 예고와 관련해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제 사회에 발맞춰 환경보호에 힘쓰려는 정부의 취지에는 동감하나, 이 때문에 현장에서 소비자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송파구 소재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한 20대 직원은 "지금도 진상 손님이 많은데 정부가 시빗거리를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취객들에게 '비닐 없이 어떻게 들고 가란 거냐'란 말을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 아찔하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이어 "정부 차원의 캠페인이나 계도기간을 도입해도 늘 크고 작은 마찰이 있지 않으냐"며 "무턱대고 시행하라는 식이어서 당황스럽다"고 덧붙였다.
나무젓가락 규제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하남의 한 60대 편의점 점주는 "소비자들이 뭘 먹는지 매번 확인해서 나무젓가락을 제공할 수도 없고 난감하다"며 "아예 (젓가락을) 주지 말란 것도 아니어서 반발이 좀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환경부 등 당국은 일선 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제작·배포 등 시행착오를 줄일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태료 부과에 계도기간을 둘지도 논의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되면 편의점뿐만 아니라 식당과 카페에서도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 일회용품 사용이 모두 제한된다. 야구장 등 경기장에서 무상 제공하는 플라스틱 응원봉도 규제 대상이다. 일회용 비닐장갑과 앞치마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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