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어붙은 회사채 시장 ◆
가파른 금리 인상과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맞물리면서 회사채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정치권까지 나서 정부에 시장 지원대책을 촉구한 것은 채권시장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회사채는 외면받고 우량 기업에 쏠리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자금조달력이 약한 중견·중소기업들에 대한 자금 압박은 더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물 회사채(AA-)와 국고채 간 금리 차이를 뜻하는 신용 스프레드는 이날 1.166%포인트까지 치솟았다. 2010년 1월 14일(1.12%포인트) 이후 12년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신용 스프레드가 커진다는 것은 회사채에 대해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는 것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평가한 위험도가 그만큼 올라갔다는 의미다.
김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1.166%포인트는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라면서 "2010년은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그다음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사태가 연이어 터져 조선·건설사 등이 부도 위험에 몰리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신용 스프레드가 당시 수준의 가격을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이 두 번 연속 빅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서는 등 기본 금리가 오른 가운데 회사채 발행에 필요한 가산금리가 상승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더 커졌다. 높아진 금리를 부담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려고 하더라도 위험을 회피하자는 분위기가 역력해지며 회사채를 찾는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하반기에 기업들이 원하는 만큼 자금조달을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9~10월 들어 연 5% 이상 고금리(쿠폰이자)를 제시하고도 투자자들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 신용등급이 A+인 삼척블루파워가 1500억원 규모 2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참여 금액은 1%대에 불과한 20억원에 그쳤다. 전일 금리 5.76%에 35bp(0.35%포인트)만큼 추가 금리를 얹어 연 6%가 넘는 금리를 제시했는데도 돈을 모으지 못한 것이다. 이달 들어서는 SK리츠가 당초 회사채를 960억원어치 발행하려 했으나 50억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SK렌터카 역시 400억원 규모 1.5년 만기 회사채 발행을 계획하고 지난 13일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참여 금액은 100억원에 불과했다.
한 증권사 채권담당은 "5%가 넘는 금리를 제시했는데도 신용등급 AA 수준의 우량 채권마저 참여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회사채 시장 침체는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여기에 지난달 말 레고랜드 지급보증 거절 사태 이후 자산유동화어음(ABCP) 시장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지면서 기업들의 단기 자금 확보는 더욱 힘들어진 상태다. 강원도는 레고랜드 ABCP에 대한 지급보증을 거절해 채권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또 다른 증권사 채권담당은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며 "채권시장에 연쇄 작용을 일으키면서 큰 혼란에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발행 물량 자체가 급감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18일 기준) 회사채 발행액은 1조2326억원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1월과 2월)에는 8조8000억원 안팎을 기록했는데, 10월 발행 규모를 월별로 환산해보면 4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현재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은 점을 고려하면 4분기 발행 규모는 직전 분기와 비교해 확연히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불확실성에 투자는 우량채 위주로 쏠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금융 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채권시장에서 우량채 위주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량기업은 나름대로 금리 급등에 따라 회사채 발행을 망설이고 있는 분위기다. 채권 발행 규모가 감소한 주요 이유다. 실제로 올해 초 2%대 중후반을 기록했던 우량 회사채(AA- 3년) 금리는 5.4%대로 급등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우량기업마저도 현재는 회사채 시장보다 은행 조달을 먼저 생각할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상대적으로 자금조달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중견·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부산 소재 기계부품 업체 A사가 대표적이다. A사는 당초 올해 상반기 10억원, 하반기 2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1분기에만 5억원을 발행했을 뿐 계획은 모두 올스톱됐다. 지난해 A사는 코로나19 여파로 영업이익이 감소했지만 신규 투자를 위해 20억원대 회사채를 발행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A사는 회사채 발행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2년간 영업이익이 줄어들면서 신용등급도 한 단계 내려가 과거에 비해 더 높은 이자를 줘야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황에 몰렸다.
경기 평택에 있는 건설중장비 업체 B사 관계자는 "금리가 너무 올라 은행 대출이자도 큰 부담"이라며 "작년만 해도 한 달 이자금액이 1000만원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1300만원이 넘는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건설경기가 나빠지면서 새로운 설비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김명환 기자 / 고재만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가파른 금리 인상과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맞물리면서 회사채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정치권까지 나서 정부에 시장 지원대책을 촉구한 것은 채권시장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회사채는 외면받고 우량 기업에 쏠리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자금조달력이 약한 중견·중소기업들에 대한 자금 압박은 더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물 회사채(AA-)와 국고채 간 금리 차이를 뜻하는 신용 스프레드는 이날 1.166%포인트까지 치솟았다. 2010년 1월 14일(1.12%포인트) 이후 12년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신용 스프레드가 커진다는 것은 회사채에 대해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는 것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평가한 위험도가 그만큼 올라갔다는 의미다.
김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1.166%포인트는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라면서 "2010년은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그다음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사태가 연이어 터져 조선·건설사 등이 부도 위험에 몰리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신용 스프레드가 당시 수준의 가격을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이 두 번 연속 빅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서는 등 기본 금리가 오른 가운데 회사채 발행에 필요한 가산금리가 상승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더 커졌다. 높아진 금리를 부담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려고 하더라도 위험을 회피하자는 분위기가 역력해지며 회사채를 찾는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하반기에 기업들이 원하는 만큼 자금조달을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9~10월 들어 연 5% 이상 고금리(쿠폰이자)를 제시하고도 투자자들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 신용등급이 A+인 삼척블루파워가 1500억원 규모 2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참여 금액은 1%대에 불과한 20억원에 그쳤다. 전일 금리 5.76%에 35bp(0.35%포인트)만큼 추가 금리를 얹어 연 6%가 넘는 금리를 제시했는데도 돈을 모으지 못한 것이다. 이달 들어서는 SK리츠가 당초 회사채를 960억원어치 발행하려 했으나 50억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SK렌터카 역시 400억원 규모 1.5년 만기 회사채 발행을 계획하고 지난 13일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참여 금액은 100억원에 불과했다.
한 증권사 채권담당은 "5%가 넘는 금리를 제시했는데도 신용등급 AA 수준의 우량 채권마저 참여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회사채 시장 침체는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여기에 지난달 말 레고랜드 지급보증 거절 사태 이후 자산유동화어음(ABCP) 시장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지면서 기업들의 단기 자금 확보는 더욱 힘들어진 상태다. 강원도는 레고랜드 ABCP에 대한 지급보증을 거절해 채권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또 다른 증권사 채권담당은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며 "채권시장에 연쇄 작용을 일으키면서 큰 혼란에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발행 물량 자체가 급감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18일 기준) 회사채 발행액은 1조2326억원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1월과 2월)에는 8조8000억원 안팎을 기록했는데, 10월 발행 규모를 월별로 환산해보면 4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현재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은 점을 고려하면 4분기 발행 규모는 직전 분기와 비교해 확연히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불확실성에 투자는 우량채 위주로 쏠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금융 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채권시장에서 우량채 위주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량기업은 나름대로 금리 급등에 따라 회사채 발행을 망설이고 있는 분위기다. 채권 발행 규모가 감소한 주요 이유다. 실제로 올해 초 2%대 중후반을 기록했던 우량 회사채(AA- 3년) 금리는 5.4%대로 급등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우량기업마저도 현재는 회사채 시장보다 은행 조달을 먼저 생각할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상대적으로 자금조달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중견·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부산 소재 기계부품 업체 A사가 대표적이다. A사는 당초 올해 상반기 10억원, 하반기 2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1분기에만 5억원을 발행했을 뿐 계획은 모두 올스톱됐다. 지난해 A사는 코로나19 여파로 영업이익이 감소했지만 신규 투자를 위해 20억원대 회사채를 발행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A사는 회사채 발행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2년간 영업이익이 줄어들면서 신용등급도 한 단계 내려가 과거에 비해 더 높은 이자를 줘야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황에 몰렸다.
경기 평택에 있는 건설중장비 업체 B사 관계자는 "금리가 너무 올라 은행 대출이자도 큰 부담"이라며 "작년만 해도 한 달 이자금액이 1000만원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1300만원이 넘는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건설경기가 나빠지면서 새로운 설비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김명환 기자 / 고재만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