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가격이 비싸더라도 값어치만 있다면 돈을 아끼지 않고 와인을 사들이는 마니아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부동의 1위'가 톱3 밖으로 밀려난 것은 물론, 1위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 병당 최고가 1억원 넘어...'로마네꽁티'는 4위
14일 와인 글로벌 가격비교 플랫폼 '와인서처'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생산된 '도멘 르루아 뮈지니 그랑크뤼(Domaine Leroy Musigny Grand Cru)'가 이달 초 기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1위를 차지했다.
이 와인의 병(750㎖)당 평균 소매가격은 4만1368달러(약 5930만원)이고, 최고가는 10만5906달러(약 1억5181만원)로 집계됐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평균 소매가격은 3만7700달러였는데 한 달여 만에 9.7% 더 비싸졌다.
2위와 3위, 5위를 차지한 것도 모두 '르루아' 제품이었다. 평균 소매가격 기준으로 2위 '르루아 도멘 도브네 슈발리에 몽라쉐 그랑크뤼'는 3만2027달러(약 4591만원), 3위 르루아 도멘 도브네 크리오 바타르 몽라쉐 그랑크뤼'는 2만7532달러(약 3946만원)를 기록했다.
당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꼽혔던 '도멘 드 라 로마네꽁티-로마네꽁티 그랑크뤼(Domaine de la Romanee Conti-Romanee Conti Grand Cru)는 4위로 밀려났다. 소매가격은 2만5099달러(약 3598만원)다.
단 1종을 제외하고 톱5를 모두 차지한 '르루와' 와인들은 모두 프랑스 '부르고뉴의 여왕'으로 불리는 랄로 비즈 르루아(Lalou Bize Leroy) 여사가 제조한 것이다. 르루아 여사는 일반 소비자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으나 전세계는 물론, 국내 와인 업계에서 전설로 통한다.
◆ "로마네꽁티보다 저렴하고 맛 더 좋아" 극찬
1932년생인 르루아 여사는 주류사업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와인을 배웠다. 어린 나이 때부터 와인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어머니가 종종 셀러에서 끌어내야 했을 정도라는 일화가 전해진다.
르루아 여사는 지난 1974년부터 1992년까지 로마네꽁티 공동 경영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회사 경영에 대한 시각이 동료들과 달라 충돌하자 르루아 여사는 로마네꽁티를 나와 직접 양조장을 설립,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성 중심적이었던 프랑스 와인업계에서 르루아 여사의 와인은 극찬을 받았다. 로마네꽁티보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도 2019년산 '도멘 르루아 뮈지니 그랑크뤼'에 만점을 줬을 정도다.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그간 경매가 기준 순위가 종종 바뀌기는 했으나, 시중 가격 기준으로 순위가 바뀐 건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입사하면서부터 '르루아'라는 이름을 자주 들어왔다"며 "(업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패션 분야에 '에루샤(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가 있듯이 와인 쪽에는 '르루아'가 있다고 보면 된다"며 "세금이나 중간 유통 등을 생각하면 '도멘 르루아 뮈지니 그랑크뤼'의 국내 가격은 7000만~8000만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르루아 여사가 제조하는 와인들의 시중 가격과 경매가는 연일 오르고 있다. 올해로 만 90세인 르루아 여사가 곧 은퇴하게 되면 그녀의 작품을 더 이상 구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르루아 여사는 구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직접 통나무통을 점검하는 등 양조 과정에 참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거장이 세상을 떠나면 그의 작품이 더 인정받듯, 르루아 여사가 만든 와인의 값어치도 지금보다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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