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2억 낮추고 가전 얹어줘도 세입자 외면…을로 전락한 집주인
입력 2022-10-14 17:28  | 수정 2022-10-14 23:44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금리 부담으로 전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14일 지난 7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서울 반포동 도시형 생활주택에 `즉시입주`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호영 기자]
◆ 역전세난 비상 ◆
"집주인들이 전세 세입자를 구하려고 난리예요. 입주 청소는 기본이고 에어컨 등 가전을 넣어주겠다는 조건도 걸고 있어요."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입주 물량이 워낙 많다 보니 전세 물건도 쏟아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금리가 계속 오르니까 전세 수요는 반대로 줄고 있다"며 "전세가격이 전년 대비 최소 1억5000만원은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e편한세상옥정더퍼스트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9월 전세가격이 4억2000만원(10층)이었지만 올해 9월에는 2억2000만원(8층)으로 낮아졌다. 전셋값이 갈수록 떨어지는 반면 입주 물량은 계속 나올 예정이라 집주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양주시에서는 다음달에 옥정 대성베르힐(804가구), 12월엔 옥정 더원파크빌리지(930가구) 입주가 시작된다.
전세시장 한기는 서울에서도 감지됐다. 지난 12일 찾은 서대문구 홍제동 인근 공인중개소들에는 이달 말 입주를 앞둔 832가구 규모 '서대문푸르지오센트럴파크' 전세 매물 광고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인근 단지 대부분이 준공 후 20년 이상 지난 구축이라 신축을 찾는 수요가 받쳐줄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현재 이 단지 전세 매물은 150건 이상이다. 인근 한 중개업소 대표는 "33평형이 보통 8억원에 전세 매물로 나와 있는데 1억원 이상은 내려야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초 근처에 입주했던 홍제역해링턴플레이스는 고점 대비 가격이 20% 가까이 빠졌다"고 말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홍제역해링턴플레이스 전용면적 84㎡ 전세는 지난 1월 8억5000만원에도 계약이 성사됐지만 8월에는 6억4000만원에 계약된 사례도 나왔다. 인근 다른 중개업소 대표는 "월세를 찾는 사람이 더 많은데 잔금을 치를 여력이 없는 집주인들은 전세를 고집할 수밖에 없다"며 "인근 구축 단지 전세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했다.
서대문구도 '입주 폭탄'이 예고돼 있다. 서대문푸르지오센트럴파크, 홍제역해링턴플레이스뿐만 아니라 연말까지 '힐스테이트홍은포레스트'(623가구), 'e편한세상홍제가든플라츠'(481가구)도 입주 예정이다.

한국은행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결정도 전세시장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전세자금대출 금리 부담까지 더해지면 '입주 폭탄'을 앞둔 지역 집주인들을 중심으로 세입자를 구하는 고민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빅스텝이 이뤄진 지난 12일 찾은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일대는 어디를 둘러봐도 신축 아파트가 눈에 띄었다. 이미 입주가 진행 중인 곳뿐만 아니라 공사가 한창인 단지도 많았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공사 현장과 달리 인근 공인중개소들은 다소 썰렁했다. 시장 위축 탓에 전세 매물을 찾는 이들 발길이 끊긴 탓이다.
중개업계에 따르면 검단신도시에 포함된 당하동은 '국민평형'으로 꼽히는 전용면적 84㎡ 전세 시세가 2억원부터 형성돼 있다. 올해 입주가 이뤄진 한 단지는 전체 1073가구 가운데 약 140가구가 전세 매물로 나와 있다. 최저가격은 2억원이다. 당하동에 위치한 풍림아이원의 같은 면적 전세가격이 지난해 8월 3억3000만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1년2개월 사이에 1억원 넘게 가격이 빠졌다.
가격은 내리고 있지만 전세 물량은 좀처럼 소진되지 않고 있다. 아실에 따르면 이달 13일 기준 인천 서구 아파트 전세 물량은 4412가구다. 한 달 전 3720가구 대비 18.6% 증가했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도 어떻게든 세입자를 구하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무작정 내릴 수만은 없기에 물량만 계속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2분기까지 예고된 '입주 폭탄'과 금리 인상 기조는 어떻게든 전세 세입자를 구하려는 집주인들에게 부담을 더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4분기부터 내년 2분기까지 인천 지역 10개 구·군 가운데 입주 물량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검단신도시가 포함된 서구로 집계됐다. 이 기간 서구에서는 1만6131가구 입주가 이뤄진다. 인천 전체 입주 물량 3만5349가구의 45.6%에 달한다. 2023년 2분기에만 9022가구 입주가 예정된 만큼 입주 물량 증가에 따른 전세시장 위축이 지속될 전망이다.
경기도에서는 양주시, 화성시, 평택시가 같은 기간 가장 많은 입주 물량이 대기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기간 양주시와 화성시는 각각 1만3972가구, 1만3304가구 입주가 예고돼 있다. 평택시 역시 9660가구에 달한다.
'역전세' 우려도 나오고 있다. 양주시 한 공인중개사는 "이 지역은 실거주 수요도 많고 애초 다른 신도시보다 많이 안 올랐다"면서도 "아직 역전세는 없지만 입주 물량이 계속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서울도 입주 물량에 대한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1분기 서울 입주 예정 물량은 9477가구에 달한다. 올해 4분기 5134가구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다.
서대문구 한 공인중개사는 "인근 한 단지의 경우 전세 적체가 해소되는 데 3개월 정도 걸렸다"며 "연말에 입주를 앞둔 단지는 최소 5개월 이상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되면 집주인들은 '이중고'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수요자들이 이자를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대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전세 세입자를 구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김기원 리치고 대표는 "금리 인상은 매매시장과 전세시장 모두 얼어붙게 할 것"이라며 "특히 대규모 입주 물량이 예고된 지역의 전세시장 위축 강도는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석환 기자 / 이희수 기자 / 이석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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