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 물가 핵심 지표가 또 다시 시장 예상 밖으로 뛰었다는 발표가 나온 날 뉴욕증시가 변동폭을 키우며 2%대 상승 마감했습니다. 미국 노동부가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공개한 13일(이하 미국 동부시간), 장 초반 대표 주가 지수가 2~3% 급락했다가 다시 2% 넘는 상승세로 마감할 만큼 시세가 널 뛴 하루였는데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TSMC가 시장 예상보다 나은 실적을 내기는 했지만 물가 상승세가 여전하고 미국 국채 수익률은 오히려 더 오른 상태입니다.
장 초반 기사를 통해 과도한 충격이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될 지가 오늘 증시 관전 포인트라고 언급했는데 반등세가 두드러졌습니다. 다만 시장이 뚜렷한 방향성 없이 움직이는 만큼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기업들 실적 발표와 가이던스(향후 매출 목표치)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13일 뉴욕증시 4대 대표주가지수가 일제히 올라섰습니다. '대형주 중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각각 전날보다 2.60%, 2.83% 상승해 거래를 마쳤습니다. '기술주 중심' 나스닥종합주가지수와 '중소형주 중심' 러셀2000 지수는 각각 2.23%, 2.41% 올라섰습니다. 특히 나스닥종합주가지수는 이날 개장 초반 3% 넘는 하락세로 출발했다가 2%넘게 반등하는 식으로 변동폭이 컸습니다. 반도체 대장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전날보다 2.94% 올라섰습니다.
다만 시장 변동성이 여전히 큰 상태입니다. '월가 공포지수'로 통하는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지수(VIX)가 이날 4.86% 떨어진 31.94를 기록했는데요. VIX 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30 선을 웃돌고 있기 때문에 하락 압박감이 여전히 크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날 증시가 9월 근원 CPI 연간 상승률(6.6%)이 8월(6.3%)보다 더 올라섰다는 발표 탓에 개장 직후 급락했는데 결과적으로 급등한 배경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 역시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베이커애비뉴애셋의 킹 립 최고 투자 전략가는 "사람들이 CPI 발표를 두고 숏 포지션(특정 종목 혹은 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것)을 잡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장 초반 과매도로 인한 급락세가 진정되는 국면에서 숏 커버링이 겹친 것이 오히려 반등세를 키운 것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숏 커버링이란 공매도 투자자들이 빌린 주식 등을 갚기 위해 이를 되사는 것을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주가 혹은 주가지수가 급반등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TSMC가 침체 압박 속에 시장 전망을 뛰어 넘는 호실적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반도체 업계 분위기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우선 이날 TSMC는 최근 분기 주당순이익(EPS)이 10.83대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9.72%늘었다고 밝혔는데 이는 시장 전망치(10.03대만 달러)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분기 매출 역시 6131억4200만 대만 달러로 전년 동기 보다 47.86% 늘어난 수준이고 역시 시장 전망치(5976억4000만 대만 달러)보다 많습니다. 다만 2022년 자본 지출 목표를 이전보다 약 10% 줄어든 360억달러로 잡았습니다. 스마트폰과 PC용 반도체칩 수요 둔화를 피해가기 힘들기 때문에 나온 결정이라는 해석이 따릅니다.
채권 시장에서는 미국 국채 수익률이 올라섰습니다. 미국 기준금리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19bp(=0.19%포인트)오른 4.47% 를 기록했습니다. 시중 장기 금리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6bp 오른 3.97% 에 마감했습니다.
외환 시장에서는 이날 오후 5시 25분 기준 달러인덱스가 전날보다 0.75% 떨어진 112.47 에 거래됐습니다.
에너지 시장에서는 국제 유가가 올랐습니다.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11월물은 전날보다 2.11% 올라 1배럴 당 89.11달러, 브렌트유 12월물은 2.29% 오른 94.57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정제유 재고량이 직전 주간 485만3000배럴 감소했다고 밝혔고, 올 겨울 난방비가 더 오를 것을 경고했습니다. 같은 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현재 미국 휘발유 가격이 너무 높다"고 언급했는데 전반적으로 물가 상승세가 쉽게 꺽이기 힘든 환경입니다.
한편 이날 뉴욕증시 개장 전 노동부 노동통계국(BLS)은 '9월 CPI'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연간 8.2%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8월 CPI 연간 상승률이 8.3% 인 것에 비하면 상승세가 줄어든 것 같지만 연준이 우선 고려하는 근원(core) 지표가 핵심입니다. 9월 근원 CPI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6.6% 올라서 8월(6.3%)보다 오히려 더 뛰었고 팩트셋이 집계한 전문가 9월 예상치(6.5%)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월간으로 봐도 물가가 꺾이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9월 CPI는 직전 달보다 0.4% 올라서 8월(0.1%)보다 역시나 높았고, 9월 근원 CPI의 경우 직전 달보다 0.6% 올랐는데 이 역시 8월(0.6%)과 같은 수준입니다.
물가가 계속 오름세라는 점은 연준이 물가 안정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대폭 올릴 수 있는 명분이 됩니다. 특히 연준은 현재 일자리 시장에서 실업률이 오르더라도 금리를 올려 물가부터 잡겠다는 의지를 줄곧 강조한 상황이다보니 이날 발표된 CPI는 증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모양새입니다.
근원 CPI는 헤드라인 CPI 에서 외부 요인(날씨·국제 정세 등) 탓에 가격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 부문을 제외한 물가 지수인데요. 특히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근원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주거비용 등이 물가 상승에 얼마나 기여하는 지를 근원 CPI가 보다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BLS 의 작년 말 분석에 따르면 헤드라인 CPI 에서 주거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입니다. '헤드라인 CPI'는 쉽게 말해 그냥 CPI 입니다. 주로 '근원 CPI'와 구분하기 위한 용도로 씁니다.
전날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을 공개했는데요. 이 회의록을 보면 연준 위원들이 '금리 인상 속도는 인플레이션 데이터에 달려 있다'고 했기 때문에 시장의 눈은 더더욱 오는 13일 노동부가 발표할 9월 CPI 로 쏠리는 분위기입니다. 연준이 주로 참고하는 소비 물가 관련 지표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이지만 CPI와 PCE 물가지수가 대체로 비슷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보통 CPI가 PCE물가지수보다 한 달 정도 일찍 발표됩니다. 그리고 주거비 부문이 최근 물가 상승세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인 만큼 투자자들의 시선이 CPI로 관심이 쏠린 겁니다. 연준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는데, 금리가 오르니 주거 비용이 올라서 다시 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입니다.
[뉴욕 = 김인오 특파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