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촬영 경험을 통해 노동환경 자체는 일본보다 한국이 매우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지난 10년 간 현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발표한 '중.지.신.행동강령(중지,지지,신고)'이 영화계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A4C, 일본CNC 설립을 요구하는 모임 대표)
"감독조합의 행동강령은 감독들이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편에 서야 하고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선언일 뿐,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 구속력도 없다. 미투 운동이 힘이 있을 때 현장 신고 체계와 사건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때를 놓치고는 막연히 과거보다 좋아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한국의 영화 현장이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증거는 오직 지속적인 실태조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으나 그조차도 멈춰버렸다. 한국 영화계의 성폭력 예방 운동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 박현진 감독(DGK, 한국영화감독조합 부대표)
"일본에서는 80년대에 저작권법에 감독의 저작재산권을 프로듀서에게 양도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조항이 도입될 때 프로듀서들과의 합의를 통해 보상 시스템을 마련했다. 하지만 법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서 감독들의 협상력이 너무 작다. 특히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일본영화감독들도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 모토키 카츠히데 감독 (DGJ, 일본영화감독협회 대표)
지난 8일 부산시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영화 환경 개선을 고민하는 한·일 영화단체 간담회'에 모인 일본과 한국의 영화인들은 한국과 일본 영화 노동환경부터 영화감독 재상영 보상제도의 부재, 성폭력 예방 등 다양한 영화계의 현안과 숙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후 2시에 시작된 간담회는 5시에 이어진 기자 간담회를 거쳐 밤 깊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먼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올해 들어 영화계 내 성폭력 이슈에 직면한 일본 영화인들을 대표해 문제를 맞이했던 한국 영화계가 성폭력 예방 교육을 정례화하고 DGK를 통해 중.지.신. 행동강령을 발표하는 등의 적극적 대응을 펼친 점에 존경을 표했다.
하지만 DGK 성폭력방지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성평등 소위에서 활동했던 박현진 감독은 진짜로 영화인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면서 작업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을 조성하려면 괴롭힘에 대한 신고 체계와 업계 전체의 표준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며 미투 운동의 동력의 한계에 아쉬움을 표했다.
DGK의 오기환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까지 세계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감독들을 배출한 일본 영화계가 한국과 유사한 문제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윤정 감독은 이에 일본에서는 영화 세 편만 찍으면 영화감독들이 재상영보상금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다고 들었다”며 영화감독들의 재상영보상금 제도 현황에 대해 물었고, DGJ 대표 모토키 카츠히데 감독은 오래 전에 과장돼서 전해진 이야기 같다. 50여년 전 일본에서 저작권법 개정을 하면서 감독의 저작재산권을 프로듀서에게 양도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조항이 도입되었고 이때 거세게 반대한 감독들이 프로듀서들과의 협상을 통해 보상 제도를 겨우 마련한 것”이라고 답했다. 저작권을 빼앗긴 대가로는 그 보상이 너무 적고, 오래전 합의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법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서 감독들의 협상력이 너무 작고, 특히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 대해서는 전혀 대응책이 없는 실정”이라며 다행히 2019년에 일본이 EU와 맺은 무역협정(ETA)에 영상창작자의 보상권을 상호 보호한다는 조항이 있어 이를 토대로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후카다 코지 감독은 티켓값의 3.3%를 영화발전기금으로 걷어 영진위 같은 단체를 운영하는 나라에서 영화감독의 2차 상영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것은 너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감독들은 스스로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나서주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며 일본 영화감독들이 영화계를 위한 CNC 설립을 위해 애쓰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권리를 위한 활동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 감독들은 한국 국회에서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의 저작권법이 먼저 개정되면 일본의 저작권법 개정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같은 논의들은 자연스럽게 일본판 CNC의 또다른 모델인 영화진흥위원회와 그 재원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한국 영화인들은 영화계 전체를 지원하기 위한 공적 기금의 필요성에는 한 목소리를 냈지만 한국에서 그 기금을 활용하는 주체인 영진위 활동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를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 영화인들은 한국의 영진위와 일본에서 설립하고자 하는 공적 기금 및 그 주관 단체의 활동이 성폭력 예방과 창작 환경 개선, 영화인 복지 등 영화계에 산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깊고 넓은 이야기가 오갔던 이 날의 만남은 도쿄 영화제에서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감독조합의 행동강령은 감독들이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편에 서야 하고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선언일 뿐,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 구속력도 없다. 미투 운동이 힘이 있을 때 현장 신고 체계와 사건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때를 놓치고는 막연히 과거보다 좋아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한국의 영화 현장이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증거는 오직 지속적인 실태조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으나 그조차도 멈춰버렸다. 한국 영화계의 성폭력 예방 운동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 박현진 감독(DGK, 한국영화감독조합 부대표)
"일본에서는 80년대에 저작권법에 감독의 저작재산권을 프로듀서에게 양도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조항이 도입될 때 프로듀서들과의 합의를 통해 보상 시스템을 마련했다. 하지만 법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서 감독들의 협상력이 너무 작다. 특히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일본영화감독들도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 모토키 카츠히데 감독 (DGJ, 일본영화감독협회 대표)
사진I한국영화감독조합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주축으로 한일 영화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서로의 노동, 창작 환경의 문제를 공유하고 연대를 약속했다.지난 8일 부산시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영화 환경 개선을 고민하는 한·일 영화단체 간담회'에 모인 일본과 한국의 영화인들은 한국과 일본 영화 노동환경부터 영화감독 재상영 보상제도의 부재, 성폭력 예방 등 다양한 영화계의 현안과 숙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후 2시에 시작된 간담회는 5시에 이어진 기자 간담회를 거쳐 밤 깊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먼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올해 들어 영화계 내 성폭력 이슈에 직면한 일본 영화인들을 대표해 문제를 맞이했던 한국 영화계가 성폭력 예방 교육을 정례화하고 DGK를 통해 중.지.신. 행동강령을 발표하는 등의 적극적 대응을 펼친 점에 존경을 표했다.
하지만 DGK 성폭력방지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성평등 소위에서 활동했던 박현진 감독은 진짜로 영화인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면서 작업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을 조성하려면 괴롭힘에 대한 신고 체계와 업계 전체의 표준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며 미투 운동의 동력의 한계에 아쉬움을 표했다.
DGK의 오기환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까지 세계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감독들을 배출한 일본 영화계가 한국과 유사한 문제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윤정 감독은 이에 일본에서는 영화 세 편만 찍으면 영화감독들이 재상영보상금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다고 들었다”며 영화감독들의 재상영보상금 제도 현황에 대해 물었고, DGJ 대표 모토키 카츠히데 감독은 오래 전에 과장돼서 전해진 이야기 같다. 50여년 전 일본에서 저작권법 개정을 하면서 감독의 저작재산권을 프로듀서에게 양도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조항이 도입되었고 이때 거세게 반대한 감독들이 프로듀서들과의 협상을 통해 보상 제도를 겨우 마련한 것”이라고 답했다. 저작권을 빼앗긴 대가로는 그 보상이 너무 적고, 오래전 합의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법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서 감독들의 협상력이 너무 작고, 특히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 대해서는 전혀 대응책이 없는 실정”이라며 다행히 2019년에 일본이 EU와 맺은 무역협정(ETA)에 영상창작자의 보상권을 상호 보호한다는 조항이 있어 이를 토대로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후카다 코지 감독은 티켓값의 3.3%를 영화발전기금으로 걷어 영진위 같은 단체를 운영하는 나라에서 영화감독의 2차 상영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것은 너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감독들은 스스로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나서주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며 일본 영화감독들이 영화계를 위한 CNC 설립을 위해 애쓰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권리를 위한 활동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 감독들은 한국 국회에서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의 저작권법이 먼저 개정되면 일본의 저작권법 개정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같은 논의들은 자연스럽게 일본판 CNC의 또다른 모델인 영화진흥위원회와 그 재원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한국 영화인들은 영화계 전체를 지원하기 위한 공적 기금의 필요성에는 한 목소리를 냈지만 한국에서 그 기금을 활용하는 주체인 영진위 활동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를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 영화인들은 한국의 영진위와 일본에서 설립하고자 하는 공적 기금 및 그 주관 단체의 활동이 성폭력 예방과 창작 환경 개선, 영화인 복지 등 영화계에 산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깊고 넓은 이야기가 오갔던 이 날의 만남은 도쿄 영화제에서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