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과잉 생산된 쌀 상당량을 정부가 매해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양곡관리법을 민생법안이자 당론으로 채택하자 신속하게 이를 처리한 것이다. 올해 5월 소위 '검수완박법' 처리 때와 판박이다.
정부·여당은 해당 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될 경우, 오히려 쌀 초과생산량만 늘어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1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안건조정위를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현행법은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 가격이 5% 이상 하락하면 생산량 일부를 정부가 매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렇게 쌀을 매입하는 것을 '시장 격리'라고 하는데 현행법은 시장 격리를 정부의 재량에 맡긴 반면 개정안은 이를 의무 조항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이날 안건조정위에서 신정훈 더민주 의원은 "쌀 구조적 과잉은 생산조정을 통해, 일시적 과잉은 시장 격리 통해 의무화로입법기관인 국회의 의지와 제도화를 통해 해결하는 게 마땅하다"며 "양곡관리법 일부 개정안 대안이 정부·여당 반대에 의해서 미뤄지는 것을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여당 의원들은 야당이 안건조정위를 열자 이에 반발해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여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야당은 1시간만에 단독으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안건조정위 통과 후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쌀값이) 가능하면 5% 수준 떨어지지 않게 안정화되기를 바란다는 기본적 생각 아래 시장 격리를 의무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반대할 경우 대응에 대해 묻자 그는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겠으나 다수결 원리에 의해 의결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개정안대로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오히려 공급 과잉이 유발되는 역효과가 난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이날 개정안 관련 설명자료에서 "시장격리 의무화 시 재배 유인이 증가해 쌀의 구조적 공급 과잉이 심화한다"며 "이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시장격리를 의무화할 경우 재배 면적이 줄고 재정 절감이 가능하다고 본 민주당에 대해 반박 논리를 편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시장격리가 의무화된다면 오는 2030년에는 쌀 초과생산이 약 64만t에 이르며 시장격리에 드는 예산은 1조4000억원으로 전망된다. 의무화하지 않을 경우와 비교하면 초과생산은 40만t가량 많다.
농식품부는 시장격리 의무화 반대 근거로 태국의 사례를 제시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태국 정부는 시중 가격의 1.5배에 쌀을 사들이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듬해인 2012년 태국의 쌀 생산량은 23% 늘었고, 쌀 수출은 35% 감소했다. 이로 인해 태국은 쌀 수출 1위에서 3위로 떨어졌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앞서 "2011년 태국이 유사한 정책을 추진했다가 쌀 공급이 과잉되고 재정 파탄이 나서 경제가 거덜 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여당은 이날 민주당 안건처리를 '날치기'로 규정하고 반발하고 나섰다. 농해수위 여당 간사인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은 "여야간 일정 협의도 안된 상황에서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농민들에게 장기적으로 좋아야 하는데 근시안적인 법을 통과시키면서 민주당이 포퓰리즘 정당이란 것을 여실히 보여준 행위로 계속해서 반대의견 피력하겠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향후 농해수위 전체회의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하면 본회의에 부의된다. 본회의를 통과하면 공포 후 시행만 남는다. 농해수위 위원장이 소병훈 더민주 의원이고 농해수위는 소 위원장을 제외해도 민주당 10명, 국민의힘 7명, 무소속 1명(윤미향 의원)으로 구성돼 있어 농해수위 전체회의는 사실상 통과가 예정돼 있다.
법사위에서 국민의힘이 제동을 걸려 해도 이재명 대표가 속도전을 지시한 만큼 또 다시 안건조정위가 구성되면 통과에는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다만 윤준병 의원은 정기국회 내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꼭 정기국회 내에서 해야 하는지 일정상으로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며 "단정적으로 정기국회 내에서 한다는 예단은 아직 좀 이른 거 같다"고 여지를 뒀다. 민주당 역시 법안 단독처리에 따른 비판여론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우제윤 기자 / 김보담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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