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사는 주부 A씨는 지난 8일 밤 아이 열이 38도에서 떨어지지 않자 소아과를 찾았다. 그런데 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소아과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이미 병원 문 밖까지 긴 줄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병원 문 여는 시간 40~50분 전부터 기다린 사람들이었다"며 "요즘 아이들 사이에 독감이 유행이라던데 정말로 아파서도 많이 오고, 독감 예방 접종을 맞으려는 아이들로 붐벼 소아과 '오픈런'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오픈런(open run)은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를 하다 뛰어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최근 독감 환자 수가 크게 늘며 병원마다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병원마다 '똑닥' 등의 예약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오픈 전에는 예약 시스템과 무관하게 병원 앞 대기 순서대로 진료를 볼 수 있게 하면서 오픈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올해 독감 유행을 주도할 우세종으로 예상되는 'A형 H3N2'는 독감 중에서도 독성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져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우려가 크다.
◆ 독감 환자 얼마나 늘었나
독감 무료 예방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21일 광주 북구 미래아동병원에서 아기가 독감 주사를 맞은 뒤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9일 질병관리청의 '감염병 표본감시 주간소식지'에 따르면 올해 40주차(9월25일~10월1일) 인플루엔자(독감) 의사환자(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천분율은 7.1명을 기록했다.이는 39주차(9월18~24일)의 4.9명에 비해 44.9% 증가한 것이다.
의사환자 천분율은 외래환자 1000명 중 독감 의사환자(38도 이상의 갑작스러운 발열과 기침 또는 인후통을 보이는 자)의 비율을 말한다.
독감 의사환자 천분율은 36주차 4.7명, 37주차 5.1명, 38주차 4.7명 등으로 한동안 이번 절기 유행 기준인 4.9명 전후 수준을 기록했지만 40주차 들어 급격히 증가했다.
의사환자 천분율은 특히 영유아 사이에서 높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6세 연령대에서 독감 의사환자 천분율은 12.1을 기록하며 유행기준의 2.47배나 됐다. 이 연령대의 의사환자 천분율은 36주차 6.3명, 37주차 6.5명, 38주차 6명을 기록하다가 39주 7.9명으로 증가해 다시 40주에는 직전주 대비 52.2% 크게 늘었다.
◆독감, 왜 이렇게 빠르게 확산하나
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영유아 환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박형기 기자]
독감은 국내에서 통상 11월∼4월에 유행을 한다. 코로나19 사태 속 최근 2년간은 독감 유행이 없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탓에 올해는 일찍부터 유행이 시작됐다. 특히 영유아들이 이와 관련 면역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독감 확산세가 더욱 빠르다는 분석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독감의 주요 증상은 고열(38℃ 이상), 마른 기침, 인후통 등 호흡기 증상과 두통, 근육통, 피로감, 쇠약감, 식욕부진 등 전신증상을 보인다.
올해 독감 유행을 주도할 우세종으로 예상되는 'A형 H3N2'는 독감 중에서도 독성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형 H3N2는 지난 1968년 홍콩에서 유행이 시작된 일명 '홍콩독감'의 후손이다. 이듬해인 1969년까지 전 세계에서 1억명 이상을 감염시켰으며 이 중 100만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16일 3년만에 독감 유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질병청이 9월에 독감 유행 주의보를 발령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코로나19 유행 속 '트윈데믹' 우려 커
지난달 21일 서울의 한 의료기관에서 영유아와 어린이부터 독감 무료접종을 하고있다.[김호영 기자]
독감만 우려되는 게 아니다.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병 중 하나인 메타뉴모(hMPV),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역시 최근 영유아 사이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질병관리청에 따르면 40주차(9월25일~10월1일) 바이러스성 급성호흡기 감염증 환자는 940명으로 전주(896명) 대비 늘어났다. 이 중 메타뉴모 바이러스가 296명(31.5%)으로 가장 많고 RSV 287명(30.5%), 리노바이러스 173명(18.4%)으로 집계됐다.
메타뉴모 바이러스는 6~12개월 사이 유아 사이에서 주로 전파되는 계절성 호흡기 바이러스다. 기침, 발열 등 감기와 유사한 호흡기 증상이 나타난다. 주로 코, 목 등 상기도 감염이 나타나지만 모세기관지나 폐렴 등 하기도 감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재유행은 감소 추세지만 여전히 하루 신규 확진자가 1만~3만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와 독감 등에 동시 감염돼 중증도가 올라갈 수 있어 이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올해 독감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먼저 독감이 퍼진 뒤 고연령대가 감염되는 사례가 많다.
정부는 지난달 21일부터 독감 무료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생후 6개월 이상 만 13세 이하 어린이(2009.1∼2022.8 출생), 임신부, 만 65세 이상 어르신(1957.12.31 이전 출생)이 대상이다.
어린이와 임신부 대상 접종이 진행 중인 가운데, 고령자에 대해서는 오는 12일 만 75세 이상, 17일 만 70~74세, 20일 만 65~69세 무료 접종이 각각 시작된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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