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운동하기보단 전문가에게 제대로 운동을 배우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비싼 가격에 망설였지만,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150만원짜리 결제했어요."
2년차 직장인 20대 A씨는 퍼스널트레이닝(PT)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잦은 음주와 폭식으로 건강이 상해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PT를 받고 있다는 그는 "명품백 살 돈으로 나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운동 등 건강과 체력관리에 지출을 아끼지 않는 MZ(밀레니얼+Z)세대가 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면역과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몇 년 전만 해도 MZ세대의 생활 방식으로 불리던 '욜로족(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 '플렉스(소비를 과시)' 등 소비 행태가 달라진 모습이다.
◆ 욜로족, 플렉스는 옛말…달라진 MZ세대 소비방식
27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25일까지 런닝화, 요가복 등 스포츠 상품군의 2030세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신장했다. 같은 기간 신세계백화점에서 스포츠 품목 내 2030 매출 신장률은 24.6%로 집계됐다.
'러닝 크루(달리기 팀)' 문화도 MZ세대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퇴근 후나 주말에 모여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는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역별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야외 활동이 늘면서 오프라인 러닝 크루 모임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사진 출처 = 롯데백화점]
러닝을 SNS에 인증하는 문화도 확산됐다. 인스타그램에 '러닝크루'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26만여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게시물에는 대부분 뛴 거리와 시간, 페이스, 러닝 코스가 함께 기록됐다.
유통가도 이러한 추세에 맞춰 러닝 크루 행사를 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오는 29일 동탄점에서동탄 지역 커뮤니티인 '동탄러닝크루(DTRC)', 스포츠 브랜드 '푸마'와 함께 동탄 러닝 크루 이벤트를 진행한다. 다음달 2일 서울 잠실 일대에서 여는 '스타일런' 마라톤 행사는 접수시작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5000여명이 선착순 마감됐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동탄 러닝 크루의 경우 2030세대가 80%"라며 "혼자서 달리는 것이 아닌 공통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좋은 에너지를 공유하고 인증하는 문화가 일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 비용과 시간 투자해 운동…성취감·만족감 얻어
러닝과 헬스는 물론 요가, 필라테스, 수영 등 다양한 종류의 운동을 즐기는 젊은 층도 상당하다.
20대 B씨는 오는 11월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여할 계획이다. 그는 이번 마라톤에서 10㎞ 완주를 목표로 매일 1시간씩 집 근처 공원을 달린다. B씨는 "첫 마라톤을 앞두고 시간을 내서 뛰고 있는데 바깥 공기를 마시면서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활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주 2회 수영을 한다는 30대 C씨는 "체력 증진과 동시에 정신건강까지 맑아진다"며 "꾸준히 운동하며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자존감도 올라간다. 술 마시는데 돈 쓰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새로운 운동을 찾고 남과 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의 특징도 드러난다. 3개월째 폴댄스를 배우고 있다는 20대 D씨는 "호기심에 시작했는데 봉에 매달려 동작을 해야 하는 고강도 운동이라 힘들긴 하지만 그만큼 뿌듯하다"며 "어려워 보였던 자세를 해내면 성취감도 생긴다. 함께 수업 듣는 사람의 절반은 2030세대"라고 설명했다.이처럼 MZ세대가 운동에 꽂힌 이유는 체력관리를 함과 동시에 운동이 나를 보여주는 또 다른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SNS에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해시태그와 함께 운동 '인증샷'을 공유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오늘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이는 부지런한 삶을 지향하는 '갓생(God+인생)살기'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고물가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명품 소비보다는 자기개발에 더 집중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제는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위기감이 생긴 것"이라며 "고물가에 지갑을 아예 닫는 게 아니라 평소 소비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활동을 절약적, 합리적인 방식으로 소비하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아영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