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집단사고'가 느껴지는 영빈관 신축 논란 [핫이슈]
입력 2022-09-22 09:04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영빈관을 신축하겠다며 878억원을 예산안에 반영했던 게 계속 논란이다. 비록 윤석열 대통령이 거둬들였지만 야당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어제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김수흥 의원은 추경호 경제부총리에게 영빈관 신축 예산이 반영된 경위를 따져 묻고는 직무 유기라고 비판했다. 추 부총리는 "대통령 비서실에서 기획재정부에 (영빈관 신축 예산 반영을) 지난달 공식 요청했으며, 기재부 내부 실무 검토를 거쳐 예산안에 반영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실에서 영빈관이 필요하다고 결정해 기재부에 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는 뜻이다. 기재부와 대통령실의 권력 격차를 감안할 때 기재부가 "안 된다"라는 말은 못 했을 거 같다.
영빈관 신축은 철회됐지만 대통령실의 의사 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는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 캐스 선스타인은 미국 백악관은 단일 대오를 형성해야 한다는 압박이 높을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했다. 대통령을 중신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압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권위주의 문화가 강한 나라. 한국 대통령실은 백악관보다 단일대오 압박이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권력자나 다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기가 어렵다. 다수 의견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이런 압박에 휩쓸리다 보면 이른바 '집단 사고'에 빠지게 된다. 집단 사고란 응집력 강한 집단에서 의견 일치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가 억압되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실의 누군가가 영빈관 신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해보자. 외국 정상을 초대해 대통령실 청사 2층의 다목적 홀에서 국빈 만찬을 하는 게 너무 초라하다고 했다고 해보자.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을 것이다. 버젓한 영빈관이 국익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려면 비판적 관점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나랏빚이 1000조원이 넘는다며 그 어느 때보다도 허리 띠를 졸라매겠다고 한 상황이다. 실제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보면 삭감된 항목도 많다. 5급 이하 공무원 월급은 1.7% 인상, 4급 이상은 동결하기로 했다. 물가 상승률보다 훨씬 낮다. 고금리 고물가에 서민 고통도 깊어간다. 더욱이 상당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청와대를 나와 현재의 대통령실로 옮긴 게 윤석열 정부다. 윤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와도 기존 영빈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이제 와서 갑자기 878억원을 들여 영빈관을 새로 짓겠다고 하면 납득 못할 국민이 많을 거라는 건 예측 가능한 일이다. 국격 역시 영빈관의 호화로움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지에 달린 문제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관건은 이런 비판적 관점을 자유롭게 대통령실 안에서 거론할 수 있느냐는 것. 집단 사고의 압박 속에 비판적 관점이 억압돼 있다면 이런 당연한 의문도 입 밖에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비판적인 소수는 침묵하고 다수가 "국격을 위해 영빈관이 필요해"라고 결정해버린 거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실의 의사결정 체계에 흠이 있다는 증거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실 회의 문화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집단 사고의 압박이 심해 다수 의견에 대한 반론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당장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빈관 신축 논란보다 더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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