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대한축구협회, 누구를 위한 단체인가 [이종세 칼럼]
입력 2022-09-21 13:34  | 수정 2022-09-21 13:56
정종선 전 한국고등학교축구연맹 회장
형사입건 축구인 영구 제명해놓고
1, 2심에서 무죄판결 나와도 모르쇠
협회의 ‘무죄추정 원칙 외면이 화근
제명축구인 팀해체 감독사직 등 피해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와 제명축구인 정종선(56) 전 고등학교 축구연맹 회장 겸 전 서울 언남고 축구팀 감독의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축구협회는 2019년 6월 정 전 회장이 성폭력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서둘러 공정위원회를 열어 정 전 회장을 영구 제명했고, 정 전 회장은 2021년 1월의 1심에 이어 최근 2심에서도 성폭력 관련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축구협회와의 법정 싸움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협회가 ‘무죄 추정의 원칙(Presumption of innocence)에 의거, 정 전 회장의 재판 결과를 보고 징계했다면 축구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정 전 회장의 역공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산물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9조 ‘누구든지 범죄인으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선언을 근거로 한다. 유엔이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 선언 제11조를 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고 우리나라도 헌법 제27조 4항에 ‘형사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명시돼있다. 축구협회의 일방적 제명 때문에 팀이 해체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고교연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등 심각한 명예훼손을 당한 정 전 회장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평가는 일단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축구협회 공정위원회가 투서 등에 의해 조사만 받아도 징계하는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적어도 사법당국의 유죄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징계를 유보하는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의 상황과 각계의 반응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고법, 제명 빌미였던 성폭력 무죄판결
서울고법 형사11-3부(부장 김대현 송혜정 황의동)는 지난 16일 학부모를 유사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정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강제추행 등 성폭력 혐의는 무죄로 봤으며,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도 성과급을 여러 학부모로부터 나눠 받은 것으로 보고 무죄로 판결했다. 하지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회봉사 활동 120시간도 부과했다.
정 전 회장은 2015~2019년 서울 언남고 축구부 감독으로 재직하며 2016년 학부모를 상대로 강제추행과 유사강간을 저지르고, 학부모 후원 총무로부터 성과급 명목으로 800만 원을 받아 청탁금지법을 위반했으며 축구부 운영비 등 1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1심에서 유죄가 나왔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는 "금품을 받은 정황이 입증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단했고 강제추행 등 성폭력 혐의도 1심과 같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아 무죄판결이 났다.
앞서 2021년 1월 21일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 22부(재판장 양철환 구현정 김재호)는 정 전 회장의 성폭력과 횡령 혐의를 무죄라고 판단하고, 현행법에 규정된 금액을 넘겨 성과급을 받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 원과 추징금 4000만 원을 선고했었다.

협회가 성폭력 조사받는 첫날 영구 제명”
정 전 회장은 이와 관련, 21일 지난 2019년 6월 13일 서울시경 광역수사대에 성폭력 혐의와 관련해 첫 조사를 받으러 나갔는데 바로 그날 축구협회가 공정위원회를 열고 저를 영구 제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 전 회장은 축구협회의 제명으로 언남고 축구팀의 해체와 함께 감독직에서 쫓겨났고 2002년부터 맡아왔던 고등학교 축구연맹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고 덧붙였다.
정 전 회장은 또 1, 2심에서 성폭력 혐의가 무죄판결을 받았으므로 축구협회를 상대로 영구 제명 무효 확인 소송과 피해 보상 소송 등을 제기할 것이며,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횡령 부분은 대법원에 상고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축구협회 징계는 고법 무죄판결과 별개 사안”
한편 축구협회 박경훈 전무이사는 정 전 회장 징계와 관련, 협회 공정위원회 간사인 임동호 변호사를 통해 정종선 전 회장이 고법 판결에서 무죄가 인정된 부분들과 협회가 제명처분을 내렸던 성폭행 사건은 별개의 것”이라고 문자로 알려왔다. 임 변호사는 이어 2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정 전 회장의 횡령 부분은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면 협회가 규정에 따라 필요한 조처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 축구계 일각, 협회 조치에 부정적 시각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 전 회장에 대한 제명 등 징계는 아무리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유죄 판결이 확정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며 최종 상고심에서 정 전 회장의 성폭력, 횡령 등의 혐의가 무죄판결을 받으면 축구협회가 어떻게 뒷감당을 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축구계 일각에서도 국가대표선수 출신에다 서울 언남고를 여러 차례 고교대회 정상에 올려놓아 최우수지도자상까지 받은 정 전 회장을 협회가 내치려는 인상이 짙다”며 정 전 회장이 선수노조 결성에 앞장서는 등 협회로선 눈엣가시였겠지만 선수노조 또한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축구 발전과 선수 보호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종세(용인대 객원교수·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