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전 조흥은행에 일본 돈 맡겨
은행 "진위 확인 못해 도울 방법 없어"
은행 "진위 확인 못해 도울 방법 없어"
100억 원 가치로 추정되는 현금을 3대째 찾지 못한 한 가족이 정부 당국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어제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상북도 예천군에 사는 김규정(78)씨는 부친이 1946년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서 발급받은 현금보관증을 40년째 보관하고 있습니다. 현금보관증은 개인 혹은 기관에서 다른 사람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입니다.
거액의 돈을 인출하지 못하고 있는 김씨 가족의 상황은 일제강점기 때 비롯됐습니다. 김씨의 부친은 1910년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을 하며 돈을 모은 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귀국했다고 합니다. 당시 거액의 일본 돈을 집안에 보관해두기 어려워 조흥은행 예천군 지점에 돈을 맡기고 현금보관증을 받았습니다. 조흥은행은 2006년 옛 신한은행과 통합하여 현 신한은행으로 다시 출범했습니다.
이 보관증에는 ‘1946년 3월 5일 조흥은행 풍천지점의 박종선 지점장이 예천군 보문면 미호동에 사는 김주식 씨의 일본 돈 1만 2,220엔을 받아 보관함을 증명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부친의 사인과 조흥은행 직인이 찍혀 있으며, 다른 사람이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김씨의 부친은 현금보관증을 들고 조흥은행에 다시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많은 자료가 유실되고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워 은행에서는 출금을 미뤘다고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경제개발이 가속하며 많은 외화자금이 필요했던 영향으로 엔화의 출금이 어려웠다고 알려졌습니다.
김씨의 부친은 돈을 찾지 못하고 화병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이후 1982년 김씨의 딸이 창고에 보관돼있던 현금보관증을 발견했고 다시 돈을 찾기 위해 가족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씨는 1980년대 초 조흥은행에 방문해 돈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한 국고 담당 대리관에게 "돈을 내주려면 재무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로 거액을 인출하려면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부친이 맡긴 돈의 현재 가치는 당시 환율과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40억~70억 원으로 평가됩니다. 또 76년 동안의 은행 이자까지 합하면 100억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해졌습니다.
최근 김씨 가족은 금융감독원과 신한은행 등에 민원을 내며 돈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 측도 출금을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내부적으로 최선을 다해 자료들을 찾아봤고 금융 당국에도 알아봤다. 은행 직인과 지점장 이름, 계좌 등을 다 조사해봤지만, 현금보관증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도와드릴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김씨는 "정부가 나서서 우리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연합뉴스에 사연을 알렸습니다.
[이연수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ldustn20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