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 자폐여도 일상생활 의사소통 어려워
장애인 등록 문턱 높아 복지 지원 못 받는단 지적도
장애인 등록 문턱 높아 복지 지원 못 받는단 지적도
자폐 당사자가 변호사가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본인을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고 소개합니다. 다양한 자폐성 장애 범주에서 주인공은 '경증 자폐 당사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잠시 떨어져 본다면 현실에서 경증 자폐 당사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저희 취재진은 경증 자폐 당사자를 만나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지적 능력 높으면 장애 등록 어렵다고 해"
김세이 씨는 학교를 다닐 때부터 자신이 자폐성 장애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왔다고 말합니다. "자폐 스팩트럼에 대해 정리된 글을 읽은게 고등학교 때인데, 전반적으로 저와 부합하더라고요." 사람들과 대화할 때 말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김 씨는 자폐 스팩트럼을 설명한 글에 공감했던 겁니다.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김세이 씨
김 씨가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건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8년. 뒤늦게 성인이 되어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던 중 자폐 진단을 받았습니다. 김 씨에게 '장애 낙인을 찍는 것은 아닐까' 우려했던 부모님이 장애 진단을 미뤘기 때문입니다. "지적 능력도 높고 자폐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결국 문제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자폐 진단을 받은 김 씨는 장애인 등록까지 할 수 있었을까. "어릴 때 자폐 관련해 진료 받은 기록이 없거나 지능이 어느정도 이상이 되는 경우는 등록이 쉽지 않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을 하셨어요." 장애인 등록을 해야 김 씨도 고용 등에서 다양한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등록 가능성이 낮다는 전문의의 조언에 등록을 포기한 겁니다.
장애인 등록을 하지 못하는 경증 자폐 당사자라면 일상에 어려움은 없는 걸까요. 김 씨는 취재진에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설명했습니다. "일을 처음 배울 때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나쁘게 말하면 험악한 분위기가 오가는 상황에서 대응을 적절하게 하고, 원만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에 있어 어려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어려움 실재하는데 버티면 '심리 탈진' 올 수 있어"
참고 견디다 보면 일상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이경아 도닥임아동발달센터장은 경증 자폐 당사자들이 아무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사회 생활을 견디다 보면 '심리 탈진'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자폐 당사자는 사회적 관계 맥락에 대한 이해가 어렵고 실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데 문제를 겪을 수 있어요. 이런 실패가 계속되면 우울과 불안, 강박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도움 없이 혼자서 일상 생활에서 겪는 갈등과 실패를 감내하다보면 무기력에 빠지기 쉽고 정신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이 센터장은 증상이 악화되는 등 문제가 커지기 전에 경증 자폐 당사자들이 일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상담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지원을 받으려면 장애인 등록을 해야하는데, 김 씨 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이 경증 자폐 당사자가 장애인 등록을 하긴 쉽지 않습니다.
자폐성 장애의 장애인 등록 기준에 대해 설명하는 이경아 도닥임아동발달센터장
"자폐성 장애가 36개월 이전에 발현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계속 유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이 돼야 해요. 계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태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거죠."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가정에서 장애 낙인을 우려해 진단과 치료를 미뤘다면 뒤늦게 자폐 진단을 받아도 등록까지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이 센터장은 자폐 진단만으로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고려해 한다고 설명합니다.
"저희들이 장애 등록이 되지 않았더라도 의사로부터 자폐성 장애라고 진단을 받았던 경우 그들을 위한 사회적 기술 훈련을 시켜드린 적이 있었어요. 그 때를 생각해보면 취업을 위한 안내라든지 아니면 취업 후에도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상담할 수 있는 기회들을 열어주는 지원이 가능하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 등록 문턱을 낮추기도 검토해야"
2719명
지난 2020년 자폐성 장애로 장애 판정을 받기 위해 국민연금공단에서 심사를 받았지만 장애인 등록을 하지 못한 사람들의 수입니다.
등록 기준 자체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자폐성 장애로 장애인 등록을 할 때 '정도가 심한 장애', 즉 중증 자폐성 장애에 대해서만 장애인 등록이 가능합니다. 복지 지원은 장애인 등록을 해야 받을 수 있는데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문이 중증 자폐 당사자에게만 열려있다보니 경증 자폐 당사자는 지원 자체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폐성 장애 정도 판정 기준 / 출처 = 보건복지부 고시
장애인 등록이 가능한 기준을 보면 자폐 진단을 받은 뒤 GAS 척도(발달장애 평가 척도)에서 50점 미만임을 보여야합니다. 하지만 해당 척도를 확인해보니 70점 미만이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도감독이 필요'하다고 적혀있습니다. 장애인 등록기준에 해당하지 않아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분명 있는 겁니다.
"어쨌든 등록을 해야 복지 서비스를 받는 건데, 처음 들어올 관문을 막아버리니 서비스를 못 받게 되는 거잖아요." 장애인 등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복지를 연구해온 조윤화 한국장애인개발원 박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등록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장애 정도를 판정하는 기준이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일차적 요건인데, 이를 넘지 못하면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일상생활을 하기는 가능하지만 비장애인처럼 하긴 너무 힘든 상황인 경계에 있는 분들이 계세요. 이들을 '잠재적인 장애인 복지 정책 대상자'로 보거든요. 단계적으로는 장애 등록 기준이 확대되고 장기적으로는 없어지는 것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복지 지원 없이 장애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일상 생활의 어려움을 견뎌왔던 경증 자폐 당사자들. 드라마처럼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원 체계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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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경증 자폐' 변호사…현실에선 '복지 사각지대'
https://n.news.naver.com/article/057/0001684637
[ 이혁재 기자 yzpotato@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