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네 집은 응급실이 아니예요. 자는 사람 집까지 찾아와서 문 두드리는 건 아니지 않나"
남편이 '소아과 의사'라는 사실을 동네 주민들에게 들킨 후 결국 이사를 하게 됐다는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다.
지난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4세 딸을 키우고 있다는 A씨의 글이 올라왔다.
A씨는 남편이 동네에서 작은 소아과를 운영하고 있다며 "남편 병원과 20분 정도 걸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같은 아파트 주민들 때문에 다시 (전에 살던) 시댁 근처로 이사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A씨 사연은 이렇다. A씨는 이사를 온 후 조리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친해진 사람들에게 남편이 의사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절대 의사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남편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남편의 병원에 다녀간 주민이 생기면서 동네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A씨는 "주변에 친했던 사람들이 서운하다는 얘기부터 말이 나왔다"며 "그러고는 슬슬 모르는 사람까지 카톡과 전화로 아이 영양제부터 '아이가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하냐'를 묻는 등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A씨의 남편이 소아과 의사인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주민들은 한밤중에도 연락을 해왔다. 심지어 한 주민은 아파트 단체 대화방에 "○동 ○호 ○○아버님이 소아과 의사시니 저희 아파트 어린이 주치의 해주시는 거 어떠세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A씨 남편이 소아과 의사라는 사실이 동네에 다 퍼졌다.
결국 A씨 남편은 아이가 아플 때 대응 방법, 어떤 병원에 가야 하는지 등을 안내문으로 만들어 공유했다. 그는 "퇴근 후엔 진료를 보지 않으니 개인적 연락은 삼가달라"고 요청한 뒤 대화방을 나갔다.
이 사건 이후 A씨 역시 주민들의 연락을 잘 받지 않았고 밤에는 인터폰을 꺼놓기도 했으나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고 했다. 심지어 A씨 남편 차에 붙어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하는 주민도 생겼다.
A씨는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누군가 제 험담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괴로워했다. 험담 내용은 '의사면 돈도 잘 벌텐데', '워킹맘도 아니면서 어린이집 보낸다', '의사가 술 마신다' 등이었다.
주민 등쌀에 못 이긴 A씨는 참다못해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남편이 병원에서 가운입고 있을 때나 의사지, 퇴근하고 집에서 밥 먹고 쉬고 잘 때도 의사는 아니지 않냐. 우리 집이 응급실도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마치 의사는 봉사직인 것처럼 자다 말고 나가서 아픈 애 봐줘야 하냐. 응급이면 응급실을 가셔야죠. 5분이면 오는 응급차를 타셔야지, 단지 내에서 우리 집까지 뛰어오면 5분은 더 걸린다. 그 시간에 큰 병원 응급실을 가라"고 꼬집었다.
A씨는 "물론 같이 있다가 옆에 아이가 쓰러지거나 무언가 잘못 삼키면 당연히 돌봐주고 구급차 불러준다"며 "그래도 자는 사람 집까지 찾아와서 문 두드리는 건 아니지 않느냐. 응급실 가는 게 낫다고 하는 게 야박한 거냐"고 하소연했다.
A씨는 이사 날만을 기다린다며 "의사들도 사람이고 자영업자 혹은 직장인이다. 주변 의사를 너무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김현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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