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의 성립을 까다롭게 판단하는 대법원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명예훼손이 쉽게 인정되면 건전한 비판까지 차단돼 표현의 자유가 훼손될 수 있다는 취지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5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환송했다.
A씨는 고등학교 동창 10여명이 참여하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B씨(피해자)가 내 돈을 갚지 못해 사기죄로 감방에서 몇 개월 살다가 나왔다. 집에서도 포기한 애다. 너희들도 조심해라'는 내용이 사실을 적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피고가 게시글에 적은 사실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고 고등학교 동창들로 구성된 사회집단의 이익에 관한 사항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같은 날 대법원 3부는 의료사고로 숨진 모친을 두고 의사가 '재수가 없어 죽었다'는 등 막말을 했다는 내용의 전단을 뿌려 기소된 C씨에 대해서도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전단지는 주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고 의료사고 발생 후 담당 의료인이 모욕적인 언행을 한 것은 의료인의 자질과 태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C씨의 전단지 내용이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권 행사에 도움이 되는 정보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취지다.
이날 대법원 3부는 빌라 관리자 D씨가 거주자에게 누수 공사가 늦어지는 이유를 전화로 설명하는 도중 다른 세입자를 비난했다가 기소된 사건에서도 전파 가능성과 고의를 인정하지 않으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 발언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됐다고 볼 수 없다"며 "발언이 피해자 본인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거나 실제 전달됐다는 사정만으로는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최근 명예훼손 사건들에서 대법원이 잇따라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정한 비판마저 처벌함으로써 건전한 여론 형성이나 민주주의의 균형 잡힌 발전을 가로막을 위험이 있다"며 "3건의 판결은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의 중요성을 고려해 명예훼손죄의 지나친 확장을 경계하고 그 성립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어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공연성이나 비방의 목적은 엄격하게 해석돼야 하고, 위법성조각사유로서 형법 제310조의 공공의 이익이 문제될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를 보다 넓게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들이다"고 덧붙였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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