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60%에 우는데 친구는 60만원 호텔 가자네요…단톡방 잠수탄 사연
입력 2022-08-22 09:48  | 수정 2022-08-22 11:02
[사진 = 연합뉴스]

# 직장인 정모씨(33)는 올해 여름 휴가를 떠나는 대신 '방콕(외출하지 않고 방에 콕 박혀있다)'하기로 결심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투자한 암호화폐와 주식 가격이 최근 폭락하며 목돈 수백만원을 잃은 데다가, 최근 대출 금리까지 크게 오르며 월 이자 지출이 늘어나 경제적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물가 인상으로 성수기 휴양지 숙박비와 교통비까지 이전보다 더 비싸지자 정씨는 결국 여행을 포기했다. 정 씨는 "경비를 계산해보니 국내 여행이어도 3박 4일 여행에 70~80만원 가까이 들어 차라리 집에서 드라마를 보며 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했다"며 "경제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여름 휴가를 위해 돈을 쓰기보다는 생활비에 보태는게 맞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직장인 신모씨(29)는 취업 후 처음으로 맞이한 여름 휴가를 위해 '럭셔리 여행' 계획을 세웠다. 여자친구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나면서 일박에 60만원에 달하는 고급 호텔과 한끼에 25만원짜리 고급 식당을 예약하고, 왕복 20만원이 넘는 금액의 제주도행 비행기표와 고급 수상 레저 패키지도 구매했다. 신 씨는 "일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푸는 만큼 여름 휴가를 제대로 보내기 위해 거금을 쓰기로 결심했다"며 "매일 큰 돈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간 고생한 나를 위한 소비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여름휴가철을 맞이해 젊은층 사이에 '휴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경제적 여유가 줄어들어 휴가비가 부담스러워진 청년들이 여름 휴가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반면 제대로된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고급 호텔과 식당과 같은 '럭셔리 여행지'를 방문하는 청년들도 늘어나 휴가 양상이 나뉘고 있기 때문이다.
휴가를 포기하는 '휴포족' 청년들은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들었다. 22일 구인구직포털 알바천국에 따르면 지난 7월 13~18일 회원 10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휴가 계획이 없다고 답한 이들은 가장 큰 이유로는 '비용 부담'이 꼽혔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44.4%가 모처럼 맞은 휴가를 비용 때문에 포기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런 이유로 휴가를 아예 나중으로 미루는 이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 함모씨(28)는 "성수기에 굳이 큰 돈을 들여서 여행을 가기보다는 휴가 때 쓸 연차와 돈을 모아 신혼여행 때 쓰려고 한다"고 전했다.
[사진 = 연합뉴스]
실제로 여름 휴가에 들어가는 비용은 크게 증가했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7월 음식 및 숙박비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 대비 8.3% 올랐다. 2020년 7월에는 0.8%, 2021년 7월 2.8% 밖에 오르지 않았고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에도 1.7% 오르는데 그쳤었지만 올해 물가가 급등하며 식비와 숙박비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특히 항공료와 단체여행비가 폭등했는데, 항공료의 경우 지난해 7월에 비해 16.3% 늘었고, 국내 단체여행비는 27.5%가 올랐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7월에 전년동월보다 항공료는 0.9% 증가하고 국내 단체여행비는 되레 1.4% 감소했던 것과도 크게 비교되는 수치다.
그럼에도 오히려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럭셔리 여름휴가'를 즐기겠다는 청년층도 늘고 있다. 호텔업계에 따르면 1박에 수십만원에 달하는 고급 호텔은 손님들로 가득해 주요 관광지 호텔들의 주말 투숙률은 100%에 육박하고 있다. 심지어 고급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는 '호캉스'가 인기를 끌면서 서울에서도 특급호텔 투숙률은 90%를 육박하고 있다. 호텔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참이던 지난해 보다도 오히려 호캉스를 즐기겠다는 젊은층이 늘었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외국에 나가기 번거롭거나 위험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여름휴가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경험을 위해 과감하게 소비하던 MZ세대(1980~2000년대생) 사이에서 절약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며 '휴가 양극화'가 탄생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들어 MZ세대를 중심으로 '욜로(YOLO·현재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것)'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과시 소비가 확산됐지만, 한편으로 '무(無)지출 챌린지' 같은 '짠테크' 현상도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대개 경험을 위해서 과감하게 고가의 여행에 투자해왔으나 최근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절약도 하나의 유행이 됐다"며 "결국 기존의 럭셔리 바캉스족과 어려워진 경제 상황으로 소비를 줄이는 대신 '홈캉스'나 '맛캉스' 등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휴가를 보내는 짠테크족으로 이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나은 기자 /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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