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심심한 사과? 나는 하나도 안 심심해!"...사과문이 쏘아올린 '문맹' 논란
입력 2022-08-21 15:16  | 수정 2022-08-21 21:28
[사진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실질적 문맹 논란이 또다시 확산하고 있다. 어느 콘텐츠 전문 카페의 사과문에 쓰인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발단이었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라는 의미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로 오해하고 분노하면서 문해력 저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 '심심한 사과'라는 검색어가 올라왔다. 인기 웹툰 야화첩 작가의 사인회를 열 예정이었던 모펀 홍대AK&점 관계자가 "사인회 예약이 모두 완료됐다"며 "예약 과정 중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라고 공지하면서다.
그러자 다수의 트위터 이용자들이 "심심한 사과 말씀이라니 레전드",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심심한 사과라니 정말 미쳤다", "앞으로 글은 생각 있는 사람이 올려라",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쓰냐" 등 비난을 쏟아냈다. 사과문 속에 담긴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을 지닌 심심하다는 단어를 동음이의어인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에 21일 모펀 홍대AK&점은 사과문을 재차 게재했다. 사인회 예약 오류에 대해 상세히 풀어쓴 뒤 "예약 과정에서 겪으셨을 혼선과 불편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말씀드린다"고 전했다. 심심한 사과 대신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적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누리꾼들은 "실질 문맹률이 높다는 것을 다시 체감했다", "맥락만 봐도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한자 사용을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 정도는 알아야", "무식하면 검색해 보는 성의라도", "이제 곧 무료하다도 공짜라고 해석하겠다" 등 황당함을 드러냈다.
온라인 커뮤니티 일각에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2020년 8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사흘'이 오랜 시간 차지한 바 있다. 당시 정부가 8월 17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사흘간의 연휴가 생겼다. 그러자 "3일인데 왜 4흘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또 '금일'을 '금요일'로 알아듣고 거래처에 불만을 제기한 회사원의 일화도 화제가 됐다.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자신을 쉬운 아이로 여겼다는 학생 불만이 접수됐다. 실상 교사가 학생에게 한 말은 '이지적'이라는 칭찬이었다. 반대로 교사가 '고지식'하다고 평가한 학생은 이를 고(High)+지식(knowledge)으로 받아들여 좋아했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지난 학기 코로나19 사태로 대학생들이 백신 공결을 신청하면서 공결 사유에 '병역'이라고 적은 것이 사회에 충격을 줬다. 학교 관계자들은 "병역은 입대와 관련된 내용"이라며 "공결증은 '전염성 감염 질환' 또는 '기타'로 신청해야 한다"고 문자 안내해야만 했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신문맹이라는 말이 생기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본 문맹률은 1%에 가깝다. 하지만 문장을 읽고도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률이 무려 75%에 달했다. OECD가 전 세계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도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학생들의 읽기 점수는 평균 514점으로 OECD 평균(487.점)보다 높았다. 이는 OECD 37개 회원국 중 5위로 우수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역량을 측정하는 문항에서는 정답률이 25.6%로 OECD 평균(47.4%) 이하였다.
기술이 발달하고 미디어로 정보를 접하는 것이 익숙해질수록 잘못된 이해로 누군가를 혐오하는 경우가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교육부도 대응에 나섰다. EBS는 문해력 성장을 위해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시리즈를 방영 중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한글교육 전문가를 양성하고 초·중·고 재학생들의 문해력 향상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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