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한 달 만에 보증금 872억 떼여 '역대 최대'…보증보험까지 악용하는 전세사기
입력 2022-08-14 12:02  | 수정 2022-08-17 12:28
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주택가격 하락과 기준금리 인상으로 깡통주택과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집주인이 의도적으로 보증금을 편취하는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기 방식도 조직화·지능화하면서 피해금액도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14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사고금액은 지난달 872억원으로 집계됐다. 건수로는 421건에 이른다. 금액과 건수 모두 월간 기준 역대 최고치다. 사고금액은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34억원→2017년 74억원→2018년 792억원→2019년 3442억원→2020년 4682억원→2021년 5790억원→2022년 상반기 3407억원으로 해마다 불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은 지난 2013년 9월 출시된 상품이다. 임대인이 전세 계약 기간 만료 이후에도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대신 지급해 주고 집주인에게 청구하는 제도다. 보증기관인 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 SGI서울보증에서 취급하고 있다.
대표적인 전세사기 유형으로 ▲깡통전세 ▲무자본·갭투자 ▲부동산 권리관계 허위고지 ▲위임범위 초과 계약 ▲허위 보증·보험 ▲세금 체납으로 인한 공매 ▲불법 중개·매개 행위 등이 꼽힌다.

실제로 A씨는 잠 못 이루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축빌라에 전세로 들어가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까지 보증금을 받지 못했다. 갑자기 집주인이 연락을 두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A씨는 집주인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전세 계약 당시 소유주의 어머니가 대리인으로 나와서다. A씨는 가방에서 도장을 찾던 대리인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대리인은 수도권에서 두 딸의 명의로 신축빌라 500여채를 사들인 뒤 매매가격을 부풀려 깡통전세를 내놓는 방식으로 세입자들에게서 보증금을 받아 사기 및 부동산실명제법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분양대금보다 비싼 가격으로 보증금을 형성해 분양대금을 지급하고 차액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본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투자를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보험의 허점을 이용한 전세사기도 있다. B씨는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매물이라는 말에 안심하고 전세거래를 진행했다가 낭패를 봤다. B씨는 전세계약을 체결 후 무리 없이 HUG의 보증보험에 가입했지만, 집주인 명의가 보증보험 가입을 할 수 없는 바지사장으로 바뀌었다. 이 범행을 분양업자·건축업자·공인중개사·은행원까지 공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HUG도 처음 겪는 일이라 유권해석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C씨는 어느 날 거주 중인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등기부등본을 발급해 본 C씨는 기절할 듯 놀랐다. 분명 전세 계약 당시 등기부등본을 확인했을 때에는 을구가 깨끗했지만, 처음 보는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 임대인이 금요일에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등기부등본에 그 내용이 반영되기 전인 주말에 C씨와 전세 계약을 맺은 것이다.
D씨는 전형적인 깡통전세 피해자다. D씨는 올해 초 출·퇴근시간을 줄이기 위해 회사에서 가까운 전셋집을 구했다. 영끌로 모은 3억원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주택은 공시지가가 1억6000만원에 불과했다. 계약서 작성을 도와준 부동산에서도 D씨의 사정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신축 건물은 매매가 이뤄진 적이 없어 시세를 알기 힘들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다방이 최근 2년 동안 준공된 서울 내 신축빌라의 상반기 전세 거래 3858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815건이 전세가율 90%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거래의 21% 수준이다.
E씨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전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전세금 먹튀를 당했다. 은행에서 빌린 보증금을 상환해야 했지만 임대인이 연락을 끊고 도주하면서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어느 순간 집주인은 건축주에서 임대사업자로 변경돼 있었다. 건축업자들이 분양이 잘 안 되는 물건을 처분할 때 쓰는 꼼수다. 임대사업자는 종합부동산세를 40억원 가까이 납부하지 않고 잠적했다. 체납액이 큰 만큼 가산세가 눈덩이처럼 붙었다. 세금 체납으로 압류가 되면 전세 확정일자 권리가 뒤로 밀리기 때문에 세입자는 세금 체납액을 제외한 돈만 수령할 수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임대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 임차인이 떼이게 된 보증금은 122억1600만원에 달한다. 이미 지난해 연간 피해 보증금 93억6600만원을 웃돈다.
F씨는 중개인으로부터 이상한 제안을 받았다. 마음에 드는 전세 매물을 발견했지만 보증금이 매매가격보다 비싸서 대출이 제한적이고 보증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었다. 그러자 중개인은 일단 전세 계약을 완료하면 보증금보다 높은 가격에 집을 매도해 시세를 높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시세를 기준으로 삼으면 전세대출과 보증보험 가입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세대출 이자 1000만원을 지원해 준다고 쐐기를 박았다.
복수의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이는 분양업자나 중개사들이 매매와 전세를 성사시키면 받게 되는 리베이트를 나눠 주는 행위"라며 "이자 지원 또는 이사 비용 명목의 돈을 받을 때는 좋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매매가격이 하락하면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보증금을 날리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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