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연구들은 빠른 발전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학자와 비즈니스 전문가들에게 그 작업들을 다 맡겨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윤리적 고민과 의견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던져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뇌의 움직임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박홍근 석좌교수는 지난 10일 서울국제포럼 '효당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박 교수에 따르면 10년 전 미국 백악관과 국립보건원(NIH)이 '브레인 이니셔티브'라는 두뇌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발동했을 때, 처음으로 사지마비가 된 인물이 뇌 신호를 활용해 로봇 팔로 커피를 마시는 연구결과 시연을 한 일이 있다. 당시에는 사람의 머리에 큰 기계를 얹어야 했고, 6개월 동안 로봇 팔 가동을 위해 데이터 훈련을 시키는 등 준비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런 머스크의 '뉴럴링크'와 같이 원숭이와 돼지 등의 머리 속에 칩을 심어 무선으로 이를 컴퓨터와 연결해 두뇌와 기계를 연결시키는 일이 가능해 지고 있다. 박 교수는 "금방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게 되는구나 싶어 놀랐다"라고 말했다.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스탠퍼드 하버드 등과 같은 대학교들의 연구도 활발해 지고 있고 회사들과 주요 대학 간 공동연구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뇌-기계 연결이 이뤄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참혹한 일들도 많다. 누군가 해킹을 통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뇌 신호를 넣어서 로봇 팔을 조작한다면? 중장비 기계를 뇌파로 조작하던 사람이 잠시 딴 생각을 하는 바람에 대형사고가 발생한다면? 인간의 두뇌 속에서만 존재하던 차별과 편견이 기계를 통해 나타난다면? 박 교수는 "뇌-기계 연결 기술은 의학적 영향 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들이 클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미국에서도 '브레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위해서 전체 연구비의 5% 정도는 사회적 영향, 윤리적 문제점들을 연구하는데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홍근 하버드대 화학·물리학과 석좌교수가 10일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열린 서울국제포럼 효당강연에서 뇌와 기계의 인터페이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현규 기자]
박홍근 교수는 현재 하버드대학교에서 반도체 소자, 양자센서 등을 이용해 두뇌의 신경세포들이 어떤 전기적 신호들을 주고 받는지를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뇌의 지도가 먼저 그려진 상태에서, 뇌의 한 신경세포들이 다른 신경세포와 어떤 신호들을 주고받는지를 카메라 사진 찍듯 이미지로 만든 다음, 이를 다시 영화처럼 이어붙이는 기술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눈과 뇌가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는지 등과 같은 응용연구들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정신분열 같은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의 세포에 약물을 주입했을 경우 어떻게 신경세포들이 반응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박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박 교수는 4명의 공동창업자들과 함께 올해 4월 '싸이토트로닉스 (Cytotronics)'라고 하는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했다.서울대 수석 졸업, 대학 재학 중 국제학술지 논문 발표, 한국인 최초의 하버드대 종신교수 등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 박 교수는 1991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분자전자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분자전자과학이란 전자회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트랜지스터를 분자 몇 개로만 만들어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인 기술이다.
한편 서울국제포럼은 이홍구 전 국무총리 주도로 만든 비영리사단법인으로 '효당강연'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적 명망이 있는 학자들을 초청해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이 1회 효당강연이다.
[신현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