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주거용 반지하 없애겠다는 정부…"누군 살고 싶어서 사나"
입력 2022-08-11 13:58  | 수정 2022-08-12 16:02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폭우로 사망자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주택가를 방문해 배수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 = 국토교통부]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주택침수가 이어지면서 반지하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이 고립돼 사망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서울시가 지하·반지하를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강경책을 제시했다. 이에 부동산업계에서는 반지하 거주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세입자들을 위해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를 전면 불허하도록 하는 건축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신축 건물을 지을 때 지하·반지하 거주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 것은 물론 기존 건물도 최대 20년 동안 유예 기간을 주고 주거용으로 쓰지 않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지하·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는 차상위계층에게는 공공임대주택 입주나 월세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취약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으로 사라져야 마땅하다"라며 "시민을 보호하고 주거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 25개 자치구에 건축허가 시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하는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했다.
건축법 11조에는 상습적으로 침수되거나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에 건설하려는 건축물의 지하층 등 일부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인정되면 지방자치단체 건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다는 근거 규정이 존재한다. 이는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저지대 주택가의 인명·재산 피해가 잇따르면서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조항이다.

하지만 지하·반지하 주택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과 동작구 상도동의 반지하에 살던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목숨을 잃었다. 건축법이 지하층 건축 자체를 금지하는 법령이 아니고, 사회구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지하·반지하 주택을 퇴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전국의 지하·반지하 주택은 32만7320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61%에 해당하는 20만849가구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저소득층과 비정규직의 비율이 각각 74.7% 52.9%에 달한다. 노년가구주(19.2%)와 자녀양육가구(22.1%)의 비율도 다른 주거형태에 비해 높은 편이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지하·반지하 임차가구의 평균 소득은 182만원으로 집계됐다. 아파트 임차가구 평균 소득(351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앞서 국토교통부도 영화 '기생충'이 흥행하면서 반지하방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전수조사와 함께 주거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지만 흐지부지된 바 있다. 같은 건물이라도 지하층과 지상층의 월세가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곳이 대다수다. 셋값을 맞추려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 수준의 보증금을 확보해야 한다. 현실의 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지난 8일 오후 폭우로 일가족이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사건 현장. 주민들은 빌라 바로 앞에서 싱크홀이 발생해 빗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어 일가족이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복수의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반지하 매물을 찾는 수요자들은 교통비·식대·통신비 등을 해결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자금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며 "같은 가격에 더 넓은 거주면적을 사용할 수 있고 직장이나 학교 등 접근성이 좋아 반지하 생활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해 강제 이주를 반길 유인이 없다"고 전했다.
이처럼 주거비용이 저렴해 지하·반지하를 찾는 세입자가 많은 상황인 데다가 윤석열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을 문재인 정부 대비 줄일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연평균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은 14만가구였다. 반면 윤석열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정 공급량은 10만가구에 불과하다. 현재 서울 내 공공임대주택은 24만호 안팎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주거 상향 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들어온 가구는 1669세대다. 이 중에서 반지하 가구는 247세대에 그쳤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누구는 살고 싶어서 반지하 사는 줄 아느냐", "지하층으로 내몰린 인생 이제는 또 어디로 내몰리게 될까", "쫓겨나기 전까지 보증금을 무슨 수로 마련하지", "장마 피해 한두 해 입는 것도 아닌데 여태 뭘 하다가", "매번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임대주택은 뭐 들어가기 쉽나?", "너무 막막하다" 등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학계에서도 반지하는 없어져야 할 주거공간이지만, 장단기 종합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하수처리 시설 보완이나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면서 전체적인 주거 레벨을 끌어 올려 애초 반지하가 생길 수 없는 주거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 유난히 반지하가 많은 이유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의무적으로 시가전을 치를 수 있는 방공호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라며 "도시·산업화로 인구 밀집 현상이 심화하면서 주거공간이 부족해지자 반지하를 세 주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 수도권에서 가장 적은 임대료를 내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험에 노출된 반지하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주거환경이 맞다"면서도 "(단순히 지하방에서 살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적으로 반지하를 없앨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등 건축법규와 사회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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