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50mm 비 오면 1분도 안 돼 열려
서울시, 올해 노후불량 하수맨홀 정비 예산 20억 삭감
전문가들 "평상시에도 맨홀 위험성 인식해야"
서울시, 올해 노후불량 하수맨홀 정비 예산 20억 삭감
전문가들 "평상시에도 맨홀 위험성 인식해야"
서울에 전례없던 집중호우가 쏟아진 지난 8일 밤, 서울 도심의 맨홀들은 말 그대로 '지뢰'로 변했습니다. 강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맨홀 뚜껑이 튀어오르며 파손 피해가 발생한 것은 물론, 뚜껑이 없는 것을 보지 못한 행인들이 맨홀에 빠져 실종되는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8일 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집을 나섰던 한 남매는 폭우로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 급류에 휩쓸렸고, 그대로 실종됐습니다. 남매 중 남동생인 40대 남성은 10일 오후 3시쯤 실종 장소에서 1.8km 떨어진 한 맨홀에서 숨진 채 발견됐지만, 누나인 50대 여성은 아직도 실종 상태입니다.
철제 맨홀 뚜껑의 무게는 최소 40㎏에서 최대 160㎏에 달합니다. 그러나 집중호우에는 이처럼 무거운 맨홀 뚜껑도 많은 비의 압력으로 튕겨나가기 일쑤입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과거 서울 강남역의 도로 조건을 재현해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시간당 50mm 폭우 기준으로 40kg 무게의 맨홀 뚜껑이 26cm 위의 공중으로 떠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41초였습니다. 그런데 서초동에서 남매가 사고를 당한 시점에는 시간당 무려 12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도로에 가득한 맨홀이 모두 '지뢰밭'으로 변했으리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폭우 시 튀어오르는 맨홀 뚜껑보다 더 위험한 것은 흙탕물이 일정 수위를 넘었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맨홀 구멍 자체입니다. 맨홀에 빠진 실종자는 지하관로로 휩쓸려 가면서 위치 파악이 어렵고, 맨홀 속 유속이 빨라 소방대원의 진입도 제한됩니다.
8일 밤 내린 폭우로 뚜껑이 날아간 맨홀 구멍으로 물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현재 서울에 설치된 맨홀 총 62만 4318개 가운데 27만여개는 맨홀 뚜껑에 잠금장치가 부착된 '잠금식'입니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폭우에는 잠금장치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맨홀 사고 방지를 위해 기술적 조치를 뛰어넘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잠금장치만 강하게 만들어봐야 철제 맨홀 뚜껑이 조각조각 깨지면서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시 올해 예산을 보면 지난해 35억 원가량 편성됐던 '노후불량 하수맨홀 정비' 예산은 올해 15억 원 규모로 20억 원 삭감됐습니다. 100여 년 만의 폭우를 사전에 예측하기는 어려웠겠지만, 혹시 모를 사고 가능성에 조금이나마 대비할 수 없었을 지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노후불량 하수맨홀 정비 예산 / 출처 = 2022 알기 쉬운 서울시 예산
결국 자류조 확대로 빗물이 원활하게 배수되게 하는 것이 근본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배수 압력을 낮춰야 맨홀 뚜껑이 버틸 수 있고, 맨홀 사고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민들도 맨홀 뚜껑과 폭우 시 맨홀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권지율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wldbf99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