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비상금격인 외환보유액이 5개월만에 다시 늘었지만 최근 교역조건 악화로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줄고 외환 순유출은 늘면서 외환수급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우려가 한국은행 내부에서 제기됐다. 이에 대외부문 균형이 흔들릴 경우 발생할 충격에 대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386억1000만달러로 6월말 대비 3억3000만달러 소폭 증가해 5개월 만에 증가 전환했다. 기타통화 외화자산 미달러 환산액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외화자산 운용수익, 금융기관 외화예수금 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강달러 영향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액이 다시 늘어난 것은 긍정적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은 내부에서는 외환수급이 상황이 좋지 못해 대외건전성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면 향후 외환부문의 안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제기됐다.
2일 공개된 한은 7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융통화위원은 "최근 교역조건 악화로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기관투자가 등 큰 규모의 해외투자가 지속되고 있다"며 "환율, 외환수급 등 대외부문에서 복원력이 약화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인플레이션 확대와 원화약세 등으로 거시경제 안전성과 대외부문 균형이 흔들릴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가 추세적으로 늘고 있는 만큼 외환 순유출이 단순한 사이클상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에는 줄곧 경상수지 흑자 기조였기 때문에 외환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에 공급되고 이를 다시 거주자들이 해외증권에 투자하는데 유출되는 정도의 균형이 적당한 수준이었지만, 최근 경상수지 흑자폭이 주는 등 구조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은이 지난달 발표한 '5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4월 8000만달러 적자에서 5월 38억6000만달러 흑자로 전환됐지만 전년 동월 대비 흑자폭은 65억5000만달러 나 축소됐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수입 증가 속도가 수출 증가 속도보다 빠르게 늘면서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 흑자폭 감소세가 추세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6월말 한은이 발표한 '2021년 지역별·통화별 국제투자대조표(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말 준비자산(4631억달러)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대외금융자산 잔액은 1조7153억달러로 전년 말 대비 1778억달러 증가했다. 특히 거주자 해외증권투자가 미국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주가가 오르면서 미달러화(1436억달러 증가)에 대한 투자 잔액이 크게 늘었는데 기존 최대(2020년 1277억달러 증가) 기록을 1년 만에 다시 경신했다.
거주자 해외증권투자는 외환보유액은 아니지만 대외에 나가있는 자산이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로 외화 공급이 잘 받쳐줄 경우에는 '제2의 외환보유액'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추세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위원은 "10여 년 동안의 외환수급 흐름을 보면 경상거래를 통한 외환 유입이 자본거래를 통한 외환 유출로 상쇄되는 가운데서도 전체적으로는 순유입이 유지되는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 왔으나, 최근에는 순유출이 지속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나타나면서 단기외채가 증가한 적이 있는데, 이는 이후 금융위기 상황에서 급격한 자본유출을 초래하는 계기가 됐다"고 언급했다.
이어 교역조건 악화로 경상수지 흑자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자본거래를 통한 외환유출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대외 불균형 완화를 위한 정책적인 노력과 함께 혹시 발생할지 모를 충격에 대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다른 위원도 "외환수급 측면에서는 외환 순유출(경상 및 자본거래 기준)이 지속되는 가운데 특히 외국인 장기 채권투자자금이 순유출된 점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박동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